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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아이콘 된 러 국영TV 직원 “아들이 엄마 잡혀갈까봐 차 열쇠 감춰”

입력 | 2022-03-18 13:06:00


지난 14일 러시아 유력 국영 TV 채널 원의 저녁 뉴스시간에 뉴스쇼 프로듀서인 마리나 오브샤니코바가 “전쟁 반대. 선전을 믿지 말라. 거짓말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전쟁에 반대한다”고 쓴 종이를 들고 나타났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현지시간) 오브샤니코바와 친구를 인터뷰홰 그가 행동에 나선 과정을 추적하는 기사를 실었다.

오브샤니코바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며칠 뒤 시위에 나서려 했었다. 그러자 엄마가 잡혀갈 것을 걱정한 아들이 자동차 열쇠를 감췄다.

이후 오브샤니코바는 더 대담한 계획을 세웠다. 채널 원 저녁 뉴스가 시작된 직후 책상에서 일어나 신분증으로 스튜디오 문 두 곳을 열고 잽싸게 안으로 들어갔다. 앵커 뒤에 서서 포스터를 들고 외쳤다. “전쟁을 멈춰라. 전쟁은 안된다”라고.

그런 뒤 스튜디오를 빠져나와 기겁한 경비원을 뒤로한 채 복도에서 포스터를 버렸고 달려오는 임원들과 맞닥뜨렸다. 그들이 곧장 그를 경찰에 넘겼다.

10초에 불과한 시간에 오브샤니코바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메시지을 전달하는 기계의 톱니바퀴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가장 유명한 인사가 됐다.

그는 WSJ에 “우리 나라의 운명이 지금 정해지고 있다”면서 이에 맞서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법원은 오브샤니코바에 사전에 녹화한 동영상과 관련해 280달러(약 34만원)의 벌금형을 부과했다. 변호사는 전쟁 반대를 금지하는 법에 따라 추가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쟁 또는 침공이라고 부를 경우 최고 15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오브샤니코바는 러시아를 떠날 생각이 없다고 했다. 현재 변호사가 주선한 안전가옥에 머물고 있다. 그는 투옥된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의 유명한 말을 인용했다. “이 나라의 밝은 미래를 바라는 사람은 모두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 15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더라도 말이다.”

오브샤니코바가 방송에서 시위를 벌인 이후 채널 원의 고위직 언론이 4명이 사임했다. 러시아 하원의장은 그를 “최대한 가혹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푸틴은 16일 반대자들에게 경고를 발했다. “모든 사람, 특히 러시아인은 진정한 애국자와 쓰레기같은 반역자를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입으로 날아든 해충을 뱉어낼 것”이라고 했다. TV 연설에서 푸틴은 “이런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사회 청소가 우리 나라를 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우크라이나 도시인 오데사에서 우크라이나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브샤니코바는 자신을 러시아인으로 생각한다. 러시아어를 사용하던 아버지는 그가 한 살때 숨졌다. 어머니가 러시아로 이사했고 이후 계속 살아왔다.

오브샤니코바는 1990년대 고등학교 시절에 언론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어머니가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 일했다. 당시는 러시아에 지금보다 언론 자유가 있었다고 했다. “정부 홍보만 하지 않았다. 모두가 제대로 일하려고 애썼다”는 것이다.

고향에서 국영 TV에서 일하던 오브샤니코바는 2002년 모스크바로 왔다. 승진을 위해서였다. 석사학위를 딴 뒤 유명 앵커 자나 아갈라코바의 기사를 썼다. 아갈라코바도 오브샤니코바가 시위한 뒤 채널 원에서 사임했다.

오브샤니코바가 “인지 부조화”를 처음 느낀 것은 러시아가 2008년 조지아를 침공했을 때였다고 했다. 조국을 사랑하지만만 정책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방송 일을 했다. 현재 11살과 17살난 자식들을 보살펴야 했다.

2020년 나발니가 노비촉 신경가스에 중독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시위하려고 했지만 “정부 채널에서 일하고 있기에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안정된 수입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2년이 채 못돼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났다.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동족상잔의 전쟁이다.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슬라브인이고 러시아 사람 둘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에 친척이 있다. 그들이 유럽을 선택했다. 그건 그들의 선택이다. 그들은 자유인”이라고 강조했다.

오브샤니코바의 친구인 니나 알렉사는 2016년 국영 TV 채널을 그만두고 불법화된 단체에서 일해왔다. 두 사람은 아이들이 만나 노는 걸 지켜보며 정치에 대해 대화했다.

37살인 알렉사는 지난해 6월 조지아 트빌리시로 이사했고 오브샤니코바와 소식이 끊겼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지난 12일 오스샤니코바가 문자를 보내왔다. “트빌리시로 이사하고 싶어했다. 그럴 운명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던 중 14일 오후 6시 알렉사는 다시 문자를 받았다. 9시 뉴스를 녹화해 달라며 “고생스럽겠지만 재미 있을 것”이라고 써 있었다.

알렉사는 “푸틴이 사임하는 등의 내부 비밀 정보라도 알려주는 줄 알았다”고 했다. 오브샤니코바가 화면에 나타나자 믿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한 시간 뒤 전화를 걸었지만 오브샤니코바는 경찰서에 있다면서 문자를 하겠다고 했다. 사전에 녹화한 동영상을 보냈고 외국 언론에 보내달라고 했다.

현재 미 워싱턴 자유러시아재단의 직원으로 일하는 알렉사는 오브샤니코바와 가족들을 러시아 밖으로 망명시키는데 필요한 자금을 모았다고 했다. 오브샤니코바가 러시아에 남으면 안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15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오브샤니코바의 망명을 받아들이겠다고 했고 푸틴과 이 문제를 상의할 것이라고 했다.

오브샤니코바는 러시아인 대부분이 전쟁에 반대하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러시아가 침공한 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망연자실”했다는 것이다.

외국 기업들이 빠져나가고 러시아가 경제제재를 받는 사실을 지적하며 “러시아 사람들의 삶이 종이장처럼 갈갈이 찢길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아직 그걸 잘 모른다”는 것이다.

포스터를 영어와 러시아로 쓴 건 “러시아인 과반수가 터무니없는 전쟁에 반대한다는 것을 서방 대중에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일부에선 오브샤니코바가 몇년 동안이나 정부의 선전을 도왔다고 비판한다. 오브샤니코바는 “나는 톱니바퀴였다. 내가 불의를 모두 책임져야 하는 것처럼 말하지 말라”고 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