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으로 인격 판단하는 ‘이미지 시대’ 얼굴과 실제가 같지 않은 경우도 많아 사적-공적 영역서 사람 파악 신중해야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요즘은 사물인터넷(IoT)이 화두라 사물과 사물의 연결에 관심이 크지만 사회가 복잡해지고 전문화될수록 사람과 사람의 연결 또한 중요해진다. 어떤 문제도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렵고 여럿의 지식과 경험을 모아야 해법이 찾아진다. 이때, 누구와 함께 일하는가에 따라 성과가 나기도 하고 영 신통치 않기도 하고 차이가 크다. 문제는 ‘어떤 사람과 일할 것인가, 그 사람을 어떻게 알아보는가’인데 사람을 알아보는 일이 참으로 어렵다.
사람을 파악하는 일에 관해 내게는 정반대의 측면이 다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한두 번 보고도 꽤 정확하게 그 사람의 기질이나 일에 대처하는 방식 같은 걸 알아차리곤 했다.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소위 견적이 나온다. 그런데 일을 같이하고 친분이 생기면 어떤 사람인지 오히려 잘 보이지 않고 파악하기 어려웠다. 정말로 좋아서 좋다고 하는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데 말을 그렇게 하는 것인지,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두 가지 요인을 찾았다.
하나는 ‘빅데이터’ 덕분이었다. 짧지 않은 세월을 살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 축적된 데이터가 가리키는 바에 따랐던 거다. 또 하나는,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얽힌 입장과 이익이 없으니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서였다. 상대에 대한 입장 없음이 정확하게 보게 하는 힘이었던 거다. 하지만 어떤 일에 같이 발을 담그게 되어 각자의 입장과 이익이 생기면 그때부턴 나의 렌즈를 통해 상대를 보게 되니 있는 그대로 보이지 않았다. 사람을 알아보는 일이 갈수록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다. .
A라는 기업에 임원 B가 있었다. 육십에 가까운 나이지만 트렌드에도 밝고 인상이 좋은 신사였다. 사람들에겐 거의 웃는 얼굴로 다정하게 대했다. 자연스레 평판도 좋았는데 이상한 것은 따르는 후배가 많지 않았고 실제로 일을 같이해 본 사람들은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에게 긍정적인 사람들은 먼발치에서 스치듯 보는, 그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다.
실상을 들어보니 그럴 만했다. 중요한 선택이나 리스크가 따르는 결정을 해야 할 때 그는 잘 보이지 않았고 딴청을 하기 일쑤였다. 시간은 자꾸 가는데 리더가 결정을 내리지 않으니 후배들이 부담을 떠안았다. 반대로, 생색을 내는 자리엔 빠지는 법이 없었다. 비겁하고 용렬한 그는 결코 직원들의 고민과 회사의 어려움에 진심으로 시간과 수고를 들여 고민하거나 총대를 메고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은 실제로 겪어본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는 소위 ‘얼굴 깡패’였을 뿐 실상은 딴판이었는데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다정하게 웃는 얼굴에 넘어간다는 후문이다.
우리는 여러모로 이미지의 시대를 사는 것 같다. 온갖 매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미지에 둘러싸여 살 뿐 아니라 사람을 알아보는 일에서도 이미지의 영향을 점점 더 많이 받는다. 일견 당연한 것도 같다. 인구 수십만, 수백만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를 직접 만나 일일이 겪어볼 수는 없으므로 잠깐씩 스치면서 받는 인상과 이미지로 우리는 사람을 알아보고 판단한다. 중요한 역할을 맡을 사람도 점점 더 이미지로 선택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미지에 공을 들이고 쇼도 무릅쓴다. 실력이 있음에도 이미지가 좋지 않아 억울한 일을 겪지 않으려면 이미지를 잘 관리해야 하는 거다.
하지만 주가가 결국 기업 가치에 수렴하듯 이미지도 장기적으로는 실체에 수렴한다. 아무리 인상이 좋고 웃는 얼굴이 다정해도 실제와 괴리된 이미지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시간이 흘러 그 사람의 참모습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더구나 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조직을 책임지는 리더였을 때 우리는 얼마나 황망할 것인가. 얼굴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이미지와 실제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사람을 알아보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