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궁예의 발자취 밴 철원 주상절리에 놓인 하늘길과 물윗길 도선국사의 도읍지 천거 뿌리친 궁예 도피안사에 모셔진 문화유산의 향기
한탄강 물윗길은 강물 수위가 낮아지는 10월부터 높아지기 시작하는 이듬해 3월까지만 운영한다. 부교를 이용해 물 위를 걷는 트레킹은 신비한 주상절리를 코앞에서 바라보는 체험과 함께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물 기운을 쐬는 데도 효과가 좋다.
한탄강이 남북축으로 관통하는 철원은 궁예가 905년 천도한 후 13년간 화려한 전성기와 처참한 몰락을 겪은 곳이다. 따라서 철원 한탄강 물길을 따라가는 여행은 궁예의 흔적을 쫓는 역사 탐방길이기도 하다. 》
○한탄강 하늘길에서 만나는 1억 년의 지질 여행
한탄강 물길(주상절리길) 여행은 주상절리 절벽에 위태롭게 매달린 잔도를 걷는 ‘한탄강 하늘길’과 한탄강 물 위를 직접 걸어가보는 ‘한탄강 물윗길’로 크게 나뉜다. 하늘길 트레킹은 드르니마을 매표소에서 출발해 북쪽으로 물길을 거슬러 순담계곡까지 가는 코스와 거꾸로 순담 매표소에서 남쪽으로 물길을 따라 드르니마을 매표소까지 내려오는 코스 두 가지가 있다. 물길 여행은 가급적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트레킹 코스가 물 기운을 온전히 느껴보는 데 유리하다. 임꺽정 전설이 밴 고석정 꺽정정자에서 바라본 고석바위. 바위 정상에 피어난 소나무 군락이 한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킨다.
길 중간중간에 배치된 안내 요원들을 통해서도 한탄강 지질과 관련 설화 등에 대한 구수한 얘기를 들어볼 수 있다. 이를 테면 구멍이 숭숭 난 철원의 현무암은 ‘울음돌’이라고도 불린단다. 궁예가 왕건에게 쫓기게 되자 돌들도 눈물을 흘려 구멍이 나게 됐다는 거다. 전설을 전하는 철원 출신 안내요원의 말에서 역사적으로 과도한 비난을 받고 있는 궁예에 대한 애틋한 정마저 느끼게 된다. 드르니마을 매표소에서 순담매표소까지는 2시간 정도면 풍광을 충분히 즐기며 여유롭게 사진 촬영까지 할 수 있다.
○물 위를 걸으며 즐기는 물기운 세례
절벽 사이로 선반처럼 매달린 잔도를 이용해 한탄강 지질과 풍광을 즐기는 ‘한탄강 하늘길’ 코스.
물윗길 코스가 끝나는 태봉대교는 번지점프로 유명한데, 궁예의 태봉국에서 다리 이름을 따왔다. 하늘길의 첫 쉼터인 드르니 쉼터와 물윗길의 마지막 코스인 태봉대교가 모두 궁예와 연결되는 것도 인상적이다.
○궁예가 민통선 내에 도성을 세운 까닭은?
한탄강 주상절리길(하늘길+물윗길)에서 빠져나와 더 북쪽으로 철원 노동당사(철원읍 관전리)까지 이어지는 길목에서는 궁예 관련 얘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먼저 철원읍과 동송읍의 주산인 금학산은 도선국사(827∼898)가 궁예에게 도읍 터로 천거하면서 “이곳에 도읍을 정하면 300년 동안 갈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25년밖에 가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말이 전해지는 곳이다. 궁예는 이 예언을 무시했다. 현재의 민통선 내 고암산(780m·김일성고지)을 주산으로 삼아 왕궁을 조성했고 결국 예언대로 짧은 통치 끝에 무너졌다.
아마도 이는 왕건의 역성혁명을 정당화시키거나 짧게 끝난 태봉국의 운명을 안타까워한 나머지 지어낸 말인 듯하다.
통일신라 후기인 865년 풍수 대가인 도선국사가 화개산 기슭에서 설립했다는 도피안사는 아담한 사찰이지만 강원도에서 보기 드문 명당 터에 자리 잡고 있다.
그렇지만 궁예는 금학산 일대가 비범한 기운을 지닌 땅임을 알아차렸던 듯하다. 금학산 자락 아래 화지4리는 과거 하늘이 낸 황제의 터라는 의미로 천황지(天皇地)로 불렸다. 철원에서 궁예의 부하로 활약하던 시절 왕건이 살았다는 집터도 바로 인근에 있다.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철원향교지(철원읍 월하리)가 바로 그곳이다. 현재 잡초만 무성한 철원향교지는 풍수적으로 보기 드문 명당 터라는 점에서 거물급 지도자의 집터였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철원항교 터 건너편 산쪽으로는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도피안사가 자리 잡고 있다. 아담한 산사 마당에는 보물 제223호인 삼층석탑이 있고 본당에는 국보 제63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이곳 또한 강원도의 숨겨진 명당 사찰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궁예가 꿈꾸었던 미륵의 세상은 이상 세계에 도달한다는 도피안사의 절 이름과도 썩 어울린다.
6·25전쟁 전까지 사용된 북한 조선노동당의 철원군 당사 건물. 철원평야를 낀 철원은 6·25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 현장 중 하나였는데, 총탄 흔적이 건물 외벽에 그대로 남아 있다.
글·사진 철원=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