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수 이야기/알브레히트 보이텔슈파허 지음·전대호 옮김/256쪽·1만4800원·해리북스
지난해 미국 동부지역은 17년 만에 수백만 매미 떼의 습격을 받았다. 일명 ‘17년 주기 매미’는 2004년 알에서 깨어나 땅속에서 인고의 시간을 견딘 뒤 2021년 세상 밖으로 나왔다. 왜 하필 17년일까. 이 책 저자는 매미가 17이란 숫자를 선택한 건 합리적 셈법이라고 말한다. 비둘기, 쥐 등 천적이 많은 매미는 포식자의 성장주기를 비껴가는 소수(素數·1과 자신만을 약수로 갖는 수)를 선택해 생존율을 높였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천적의 성장주기가 3년이고 매미의 주기가 17년이면 매미는 51년 뒤에야 천적을 마주친다. 자연에서 소수는 포식자를 피하는 생존전략인 셈이다.
독일 수학자이자 세계 최초 수학박물관 마테마티쿰을 세운 저자는 전작 ‘스파게티에서 발견한 수학의 세계’(21세기북스)에서처럼 수학의 문화사적 의미를 일상사에서 흥미롭게 풀어냈다. 책에는 1, 2, 3처럼 작은 숫자뿐 아니라 원주율, 무한대 등 수와 얽힌 39가지 이야기를 담았다. 수학 원리를 풀어내려는 수학자들의 고군분투도 소개했다. 1903년 10월 31일 미국 수학자 프랭크 넬슨 콜은 2^67-1의 약수를 증명하는 강연을 열었다. 해당 숫자가 소수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증명됐지만 어떤 수학자도 이 수의 약수를 발견하지 못했다. 아무 말 없이 칠판에 자신의 계산식을 증명해낸 콜은 “이 문제를 풀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렸느냐”는 청중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3년 동안 매주 일요일마다.”
무한한 수를 탐닉한 인간의 역사에는 숫자를 뛰어넘는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다. 책에는 1965년부터 2011년 8월 6일 세상을 떠난 날까지 매일 캔버스에 숫자를 써내려간 폴란드 화가 ‘로만 오팔카’의 이야기가 나온다. 46년간 233점의 숫자 연작을 남긴 그가 생전 마지막으로 그린 수는 560만7249. 역사를 통틀어 인간이 기록한 가장 큰 수이지만 그보다 더 큰 의미를 지녔다.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은 죽는 날까지 무한에 닿기 위해 쓰고 또 쓴다는 것. 어쩌면 인간의 의지야말로 가장 경이로운 이야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