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대통령 집무실 모델로 주목 위치·공간보다 소통의 진정성 중요
김윤종 파리 특파원
16일 프랑스 파리 8구에 있는 엘리제궁을 찾았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도심으로 옮기는 방안이 추진되면서 미 백악관과 함께 엘리제궁도 참고 사례가 된다는 소식에 일대를 취재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건축가 아르망클로드 몰레의 설계로 1722년 완공된 엘리제궁은 1848년 프랑스 대통령 공식 집무실 겸 관저가 됐다. 1층에는 매주 국무회의가 열리는 대회의장이 있다. 2층에는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장실, 수석보좌관 사무실이 몰려 있다. 집권자와 참모진 간 원활한 소통에 유리한 구조란 평가를 듣는 이유다.
엘리제궁이 완벽한 ‘모범 사례’는 아니다. 오히려 ‘바람 잘 날이 없는’ 편이라고 해야 맞다. 엘리제궁은 파리 중심가인 샹젤리제 거리 바로 옆에 있는 데다, 정문 일대는 차량 이동이 금지된다. 일대 교통체증은 악명이 높다. 보안도 완벽하지 않다. 궁 주변은 경찰, 궁전 출입 통제는 공화국 근위대, 경호는 대통령경호실(GSPR)이 3중으로 관리하지만 현지 언론들은 “백악관이 안전한 벙커라면 엘리제궁은 ‘골판지’로 만든 성”이라며 수시로 비판한다.
엘리제궁은 루이 15세, 나폴레옹 3세 등 역사 속 인물들이 거쳐 간 문화유산이란 이유로, 대통령 집무실을 포함한 내부가 시민들에게 일정 기간 공개된다. 1만1179m²(약 3382평) 건물 면적에 370여 개의 방이 있다 보니 방문자들이 궁내에서 몰래 훔친 예술작품만 700개가 넘는다는 감사원 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엘리제궁을 싫어한 대통령들도 있었다.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은 “궁에서 정치를 하지 않는다”며 외부 업무를 선호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도 외부에 관저를 뒀다. 1940년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한 후 엘리제궁 중앙에 나치 깃발을 꽂고 “히틀러 만세”를 외친 역사 탓에 엘리제궁을 치욕의 장소로 생각하는 정치인들도 있다.
그럼에도 이날 기자가 만난 10여 명의 파리 시민들은 엘리제궁에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회사원 카를라 씨는 “파리 중심에서 떨어진 베르사유 궁전 사례를 보라”며 “권력(루이 16세)이 국민에게 멀어져 혁명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8구 주민 알랑 씨는 “교통체증이 싫지만 대통령은 가까이 있어야 한다”며 “보다 중요한 건 소통에 대한 의지”라고 했다.
파리 시민들에 따르면 1974년 한 청년이 엘리제궁에 잠입한 사건은 현재도 회자된다. 그는 궁궐 내부를 헤매다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체포됐다. 언론은 대통령 경호 및 보안 문제를 강하게 질타했다. 하지만 청년이 엘리제궁은 침입한 이유는 억울한 일을 겪은 후 당시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대통령에게 호소하기 위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통령은 청년을 훈방했고 여론은 ‘보안보다 중요한 건 국민과의 소통’으로 변했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