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많은 창업자일수록 약속된 납기일을 더 많이 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론적으로만 생각하면 경험이 많을수록 프로젝트 일정이 얼마나 걸릴지 잘 예측하고, 현실적인 마감 기한을 정해 실행 속도를 올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앤디 우 교수가 2010년 9월부터 2019년 6월까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킥스타터에서 로봇, 3차원(3D) 프린터 등 첨단 하드웨어 제품을 여러 번 출시한 창업자 314명을 조사한 결과 일정대로 마친 프로젝트는 전체의 4분의 1도 채 되지 않았다. 경험이 많을수록 납기일은 더 많이 무시됐다.
조사 결과, 이들이 일정에 여유를 두지 않은 건 아니었다. 연구진이 인터뷰한 모든 창업자는 예상보다 일정을 더 길게 잡으려는 경향을 보였다. 후속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평균 8일을 더 추가하는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기능을 하나 추가하면 부품이 줄줄이 바뀌어 더 많은 작업을 해야 하고 그만큼 시간이 더 걸린다는 점이 간과됐다. 창업자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킥스타터에 올린 댓글 데이터를 수집 분석한 결과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평균 21%씩 늘어났다. 그러나 연구에 참여한 창업자들은 기한을 정할 때 선형적으로 예측했다. 작은 변화 하나만으로도 일이 얼마나 복잡해질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가령 한 창업자는 고객들이 조립한 레고 모형의 모터와 조명을 제어할 수 있는 전자 블록을 만들었다. 초기 제품을 출시한 뒤 어둠을 감지하면 조명이 켜지도록 센서를 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창업자는 원래 버전보다 제작 기한을 더 많이 할애했다. 하지만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면서 더 정교한 가공 작업이 필요했고 기존 제조업체는 이 작업을 감당하지 못했다. 제작이 가능한 업체를 찾기까지 7군데를 거쳤고 결국 납기일을 놓쳤다.
신제품을 출시하는 대기업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있으리라 예상한다. 실제로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조직의 복잡성이 높아 제품 출시 과정에서 문제와 결과를 잘못 예측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른 일정 지연도 심할 것이다. 초기 성공을 거둔 이후 자신만만한 창업자들이 있다. 이런 창업자들은 자신의 프로젝트 실행 능력을 과신할 수 있다. 그러나 미래가 얼마나 힘들지 내다보지 못하는 무지는 위험하다. 연구진이 인터뷰한 창업자들은 마감일을 넘겼을 때 매우 당혹스러워했다. 더욱이 성난 고객들이 소셜미디어에서 창업자들을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비판해 곤욕을 치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과거 일정이 지연됐던 전력이 미래 자금 마련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창업자들이 납기일을 잘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복잡성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많은 일이 일어난다. 제품을 조금만 바꿔도 작업이 복잡해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선형적이 아닌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해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또한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문제를 더 잘 예측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일정을 세우기 전 부담이 작은 상태에서 새로운 기능을 실험하면 잠재적 문제를 조기에 파악할 수 있다. 스트레스 테스트, 소규모 생산, 애자일 기법 등을 이용하면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시간은 돈이고 일정 지연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자. 일정이 늦어지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 최선을 다해 지연에 대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 글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한국어판 2022년 3-4월호에 실린 ‘경험 많은 창업자가 납기일을 더 많이 어긴다’를 요약한 것입니다.
정리=최호진 기자 ho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