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인생은 거품이다
간밤에도 착실하게 늙어갔다. 얼굴에 비누 거품을 칠하고 세면대 거울 앞에 선다. 그리고 거품에 대해 생각한다. 거품은 묘하구나. 내실이 없구나. 지속되지 않는구나. 터지기 쉽구나. 존재하기는 하는구나. 확고하게 존재하는 건 아니구나. 그러나 아름답구나. 지상에서 천국으로 가는구나. 그러나 천상에 닿기 전에 꺼져버리는구나.
무엇이 거품에 비유돼왔나. 투기로 인해 치솟은 주식 같은 것들. 이유 없이 오른 가격은 곧 꺼져버릴 것이다. 상처를 남길 것이다. 선망으로 인해 치솟은 인기 같은 것들. 곧 꺼져버릴 것이다. 상처를 남길 것이다. 최고의 배우였던 고 최진실마저도 “거품 인생 살았다”라는 말을 남겼다. 희망이나 계획이 무너졌을 때, 우리는 수포로 돌아갔다는 표현을 쓴다. 어디 그뿐이랴. 인생 자체가 거품에 비유된다. 로마 네로 황제 시대의 작가 티투스 페트로니우스 니게르는 기상천외한 풍자소설 ‘사티리콘’에서 말했다. “우리는 파리보다도 저열하다. 파리들은 그들 나름의 덕성이라도 있지, 우리는 거품에 불과하다.” 만화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 등장하는 시저 안토니오 체펠리는 “인생을 거품처럼 살다간 사나이”라는 평을 받았다.
17세기 후반 네덜란드 화가 힐리암 판데르하우언의 ‘호모 불라’ 작품. 인생을 덧없는 거품에 비유한 예술 작품인 ‘호모 불라’에선 거품을 부는 아이의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 사진 출처 inkedmag 홈페이지
노인이라면 결국 거품은 터지고, 꿈이 사라질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로마의 작가 바로는 말했다. “인간이 거품이라면, 노인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 그러나 호모 불라를 다룬 작품에서 노인이 거품을 부는 모습은 발견하기 어렵다. 인생의 허무를 이미 알고 있는 상태가 호모 불라의 주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인생의 허무를 모른 채, 마냥 거품을 불어대는 것이 호모 불라의 주제다. 따라서 그림의 주인공은 노인이 아니라 아이여야 한다. 노인의 역할은 그 그림을 보면서 자기가 어린 시절 좇았던 꿈을 떠올리는 것이다.
17세기 활동한 네덜란드 화가 이사크 더야우데르빌러의 ‘호모 불라’ 작품에서 큐피드가 거품을 불고 있다. 사진 출처 rijksmuseum 홈페이지
독일 밤베르크 홀리그레이브 채플에 새겨진 요한 게오르크 라인베르거의 ‘비눗방울을 부는 망자’. 죽음으로 인해 인생은 거품이 된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사진 출처 rijksmuseum 홈페이지
인간이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인 한, 인생은 거품이다. 그러나 거품은 저주나 축복이기 이전에 인간의 조건이다. 적어도 인간의 피부는. 과학자 몬티 라이먼은 ‘피부는 인생이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한 사람의 몸에서 매일 떨어져 나가는 피부 세포는 100만 개 이상이고 이는 보통 집에 쌓인 먼지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의 규모인데 표피 전체가 매월 완전히 새로운 세포들로 교체되며 심지어 이런 흐름이 멈추지 않고 이뤄지면서도 피부 장벽에 샐 틈도 생기지 않는다… 즉, 인간의 피부는 가장 이상적인 거품 형태라고 밝혀졌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