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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지, 韓작가 최초 ‘아동문학 노벨상’ 안데르센상 수상

입력 | 2022-03-22 00:07:00


그림책 작가 이수지(48·사진)가 2022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일러스트레이터 부문을 수상했다. 아동문학상 중 세계 최고 권위를 지녀 ‘어린이책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안데르센상을 한국 작가가 받은 건 처음이다.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는 2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안데르센상 일러스트레이터 부문 최종 후보 6명 중 이 작가를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 작가는 “매우 영광스럽다. 한국 아동문학이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신호로 여겨져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 한국 작가로는 처음 이 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이 작가는 영국 런던 캠버웰예술대에서 북아트 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표작은 ‘파도야 놀자’, ‘거울 속으로’ 등이다.

안데르센상은 덴마크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1875)을 기리기 위해 1956년 제정됐다. 역대 수상자는 ‘삐삐롱 스타킹’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고릴라’의 앤서니 브라운 등이다.

5.7m 길이의 종이에 담은 그림책 ‘물이 되는 꿈’은 책의 물성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이수지 작가의 특기를 제대로 활용한 작품이다. 이 작가가 가수 루시드 폴의 동명 노래를 바탕으로 만든 그림책으로, 책장들을 하나로 이어붙여 아코디언처럼 펼쳐진다. 동아일보 DB



‘물성’과 ‘글 없음’의 미학에 천착한 이수지 작가


“책의 물리적 중심인 제본선을 현실과 환상의 경계로 사용해 독특한 상상력을 펼친다.”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는 2022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일러스트레이터 부문 수상자인 이수지 작가(48)의 작품 세계를 21일(현지 시간) 이렇게 평가했다.

‘경계 그림책 3부작’으로 불리는 ‘파도야 놀자’(2009년), ‘거울 속으로’(〃), ‘그림자놀이’(2010년)는 제본선을 놀라운 방식으로 활용했다. 제본선은 ‘파도야 놀자’에서는 바다와 모래사장을, ‘거울 속으로’에서는 현실과 거울을, ‘그림자놀이’에서는 실체와 그림자를 각각 나눈다. IBBY는 글을 최소화하고 그림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해 “독특하고 문학적이며 미학적인 혁신”이라고 평가했다.

아시아 작가가 안데르센상 일러스트레이터 부문을 수상한 건 1984년 일본 작가 안노 미쓰마사(1926~2020) 이후 38년 만이다. 이 작가는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의 고전을 재해석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2002년 이탈리아에서 먼저 출간하는 등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작가는 21일 “내 그림책의 주인공을 한국 독자들은 한국 아이로, 미국 독자들은 미국 아이로 생각한다”며 “무국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로 그림을 그렸다는 점도 의미 있게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대 서양학과 재학 시절 북 아트에 빠진 이 작가는 영국 런던 캠버웰예술대에서 북 아트를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북 아트는 책을 지그재그로 접어 병풍처럼 펼치게 하는 등 책의 물성(物性)을 예술적으로 극대화한 장르다. 이 작가는 “일반인에게 친숙하고 가까운 책을 색다른 방식으로 활용한다는 점 때문에 북 아트에 끌렸다”며 “책의 물성을 이용하는 법을 배운 게 작품세계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이 작가는 그림책을 연극 무대처럼 활용한다”며 “그의 실험적인 작품 세계가 세계에서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가수 루시드폴의 동명 노래를 바탕으로 이 작가가 만든 그림책 ‘물이 되는 꿈’(2020년)은 파란 수채 물감으로 맑게 그린 그림들을 하나로 이어 붙여 아코디언처럼 펼쳐지게 했다. 길이가 5.7m에 달한다. 올해 2월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을 수상한 그림책 ‘여름이 온다’(2021년)는 물풍선 놀이를 색종이와 색 스프레이로, 악보와 쏟아지는 물을 색 테이프와 스티커로, 하늘로 치솟는 물줄기를 색실에 물감을 묻혀 각각 표현했다. 박지은 비룡소 편집주간은 “그림책은 글 없이 기승전결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매체”라며 “이 작가는 그림책만이 도전할 수 있는 실험을 최대치로 시도하는 예술가”라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