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작가 이수지(48·사진)가 2022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일러스트레이터 부문을 수상했다. 아동문학상 중 세계 최고 권위를 지녀 ‘어린이책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안데르센상을 한국 작가가 받은 건 처음이다.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는 2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안데르센상 일러스트레이터 부문 최종 후보 6명 중 이 작가를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 작가는 “매우 영광스럽다. 한국 아동문학이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신호로 여겨져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 한국 작가로는 처음 이 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5.7m 길이의 종이에 담은 그림책 ‘물이 되는 꿈’은 책의 물성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이수지 작가의 특기를 제대로 활용한 작품이다. 이 작가가 가수 루시드 폴의 동명 노래를 바탕으로 만든 그림책으로, 책장들을 하나로 이어붙여 아코디언처럼 펼쳐진다. 동아일보 DB
‘물성’과 ‘글 없음’의 미학에 천착한 이수지 작가
“책의 물리적 중심인 제본선을 현실과 환상의 경계로 사용해 독특한 상상력을 펼친다.”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는 2022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일러스트레이터 부문 수상자인 이수지 작가(48)의 작품 세계를 21일(현지 시간) 이렇게 평가했다.
서울대 서양학과 재학 시절 북 아트에 빠진 이 작가는 영국 런던 캠버웰예술대에서 북 아트를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북 아트는 책을 지그재그로 접어 병풍처럼 펼치게 하는 등 책의 물성(物性)을 예술적으로 극대화한 장르다. 이 작가는 “일반인에게 친숙하고 가까운 책을 색다른 방식으로 활용한다는 점 때문에 북 아트에 끌렸다”며 “책의 물성을 이용하는 법을 배운 게 작품세계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이 작가는 그림책을 연극 무대처럼 활용한다”며 “그의 실험적인 작품 세계가 세계에서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가수 루시드폴의 동명 노래를 바탕으로 이 작가가 만든 그림책 ‘물이 되는 꿈’(2020년)은 파란 수채 물감으로 맑게 그린 그림들을 하나로 이어 붙여 아코디언처럼 펼쳐지게 했다. 길이가 5.7m에 달한다. 올해 2월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을 수상한 그림책 ‘여름이 온다’(2021년)는 물풍선 놀이를 색종이와 색 스프레이로, 악보와 쏟아지는 물을 색 테이프와 스티커로, 하늘로 치솟는 물줄기를 색실에 물감을 묻혀 각각 표현했다. 박지은 비룡소 편집주간은 “그림책은 글 없이 기승전결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매체”라며 “이 작가는 그림책만이 도전할 수 있는 실험을 최대치로 시도하는 예술가”라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