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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그라드와 키이우[임용한의 전쟁사]〈204〉

입력 | 2022-03-22 03:00:00


스탈린그라드는 인구 60만 명이 살던 소련 제3의 공업도시였다.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면 중요하지만 이 도시 하나로 전쟁의 승패가 바뀔 정도는 아니었다. 1942년 8월 독일 제6군 25개 사단이 스탈린그라드를 향해 몰려왔다. 그중 8개 사단이 도시 공격에 투입된다.

시가전의 어려움을 알던 독일군은 대규모 폭격과 포격으로 도시의 건물을 초토화시키고, 시가로 진입했다. 겨우 1만 명의 소련군은 시민군과 함께 한 달을 버텼지만, 함락 직전에 몰렸다. 이때 동쪽에서 지원부대가 도착했다. 소련군은 계속 병력을 투입했고, 스탈린그라드 시가전은 그야말로 난투극이 됐다.

양측은 10명 이하의 소그룹으로 나뉘어 폐허에서 저격병, 소총 수류탄, 삽까지 동원해 숨바꼭질하듯이 싸웠다. 전선도 없고 방어거점도 없었다. 이것이 시가전의 실체이자 악몽이다.

독일군은 악착같이 저항하는 소련군에게 진절머리를 냈지만 조금 후에 상황이 바뀌었다. 동부 시베리아에서 대규모 증원군이 도달하면서 독일 6군은 거꾸로 소련군에게 포위됐다.

독일군은 탈출할 기회가 있었지만, 히틀러는 철수 명령을 거부했다. 이전부터 전황이 꼬이자 참모총장을 비롯해 장군들을 마구 해임했다. 절망적 상황에서도 독일군은 도시 폐허를 무기로 2개월을 버텼다. 1943년 기아 상태에 몰린 독일군 9만 명이 결국 항복한다. 이때 도시에 남아 있던 시민은 겨우 1000여 명이었다.

도시 시가전은 최악의 전쟁이다. 그 자체가 전쟁범죄나 다름없다. 러시아가 지금 키이우에서 스탈린그라드를 재현하려 하고 있다. 이미 다른 도시에서 무차별 포격을 감행하고 있고, 키이우에서는 더 심한 짓도 할 수 있다는 기세이다. 허세일 수도 있지만, 이미 푸틴은 3번 이상 서구의 예측을 넘었다. 러시아가 내세우는 침공 이유가 돈바스 지역에서 우크라이나의 학살과 만행이다. 이건 아직 검증된 사실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해도 이런 전쟁의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