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우크라 침공 한달] 돈바스-크림반도 잇는 요충지… 함락땐 수도 키이우도 위태 러軍, 오데사 주거지도 포격 시작… 주민들 3주째 전기-식량 없이 고립 눈 녹여 마시며 폭격 두려움에 떨어… 외교관 “내가 본 것 아무도 안보길”
생지옥에서 온 아들… “살아줘서 고마워” 20일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 기차역에서 한 여성이 마리우폴에서 탈출한 아들(왼쪽)과 상봉해 포옹하고 있다. 마리우폴은 러시아군에 사방으로 포위돼 3주 넘게 전기, 수도, 가스가 끊긴 상태이며 학교와 산부인과 등 민간 시설이 무차별 폭격을 받아 도시 내 건물 80% 이상이 파괴됐다. 마리우폴에서 탈출한 시민들은 “거리에 수습하지 못한 시신이 널브러져 있는 등 ‘생지옥’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르비우=AP 뉴시스
‘거리에 널린 시신들 사이로 어린아이 시신까지 보인다. 러시아군에 포위된 도시에 갇혀 눈을 녹여 먹으며 버티던 사람들은 굶주리다 못해 주인 잃은 개까지 잡아먹고 있다.’
우크라이나 동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21일(현지 시간) 모습이다. 러시아는 이 도시를 함락하기 위해 쑥대밭으로 만든 뒤 데드라인을 정해 항복을 요구했지만 시 당국이 항복을 거부하면서 도시 전체가 궤멸 위기에 놓였다. 흑해 연안 최대 항구 도시 오데사 주거지역에도 이날 처음으로 러시아군의 포격이 시작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속전속결에 실패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민간인을 괴롭혀 우크라이나를 항복시키려는 ‘플랜B’로 선회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 러, 전쟁 성패 직결 마리우폴 함락 집착
○ “2차 대전 때 레닌그라드처럼 완전 파괴”
마리우폴 인구 47만 명 중 15만 명은 이달 초 도시를 떠났다. 남은 32만 명 중 20만 명도 탈출을 시도했지만 러시아군의 포위에 막혀 식량과 수도, 가스, 전기가 모두 끊긴 상태로 3주 넘게 도시에 갇혀 있다.
주민 미콜라 오시첸코 씨는 “지하실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 너무 목이 말라 히터에 있던 물도 빼 마시고 눈도 녹여 먹었다. 개울에 긴 줄이 생기면 러시아군의 공습 타깃이 됐다”고 했다. 그는 “폭탄이 떨어질 때마다 절박한 마음에 아들을 몸으로 감싸지만 아들을 지킬 순 없다는 걸 알기에 완전한 무기력감을 느꼈다”고 했다. 마리우폴에서는 공습으로 사망한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조차 너무 위험해 거리에는 떠돌이 개들이 방치된 사체를 먹는 모습도 목격되고 있다.
대피할 곳을 찾던 중 폭격을 받아 딸과 네 살배기 손녀를 잃은 블라디미르 씨는 BBC에 이같이 말했다. “땅을 봤는데 손녀의 머리가 심하게 훼손돼 있었어요. 바로 옆에 있던 딸도 다리에 중상을 입고 다음 날 숨을 거뒀어요. 신이시여,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제가 이 어여쁜 아이들을 묻다니요.”
학교 지하실 방공호에서 200여 명과 함께 대피해 있었던 크리스티나 졸라스 씨는 스카이뉴스에 “공습 때 한 여성이 엉덩이에 파편을 맞았다. 구호 인력 도착 전까지 그 상태로 꼬박 하루를 버텨야 했던 여성은 너무 고통스럽다며 독약을 달라고 부르짖었다”고 전했다. 그는 “잘 때도 폭격이 계속돼 아이들을 몸으로 덮은 채 어디에 떨어질지 모를 폭탄을 기다렸다”고 했다.
한 우크라이나 병사는 ‘마리우폴에서의 마지막 메시지’란 동영상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이름을 부르며 “약속한 무기와 탄약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