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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레이건 동행 리무진 뒷좌석에서 생긴 일[정미경 기자의 글로벌 스포트라이트]

입력 | 2022-03-22 14:00:00

미국의 정권 인수 과정 들여다보니…




미국에는 독특한 대통령 취임식 전통이 있습니다. 곧 대통령이 될 당선인과 물러나는 대통령이 같은 리무진을 타고 백악관을 출발해 취임식이 열리는 국회의사당까지 갑니다. 10분 정도 걸리는 짧은 거리이지만 ‘비스트’라고 불리는 대통령 전용 리무진 뒷좌석에는 어색열매를 먹은 듯한 분위기가 흐릅니다. 대통령이 된다는 한 쪽의 희망감과 내려와야 한다는 다른 한 쪽의 아쉬움이 교차하는 동행길이기 때문입니다.

1981년 1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 때 그런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리무진 뒷좌석에서 퇴임하는 지미 카터 대통령은 선거 패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사건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었고, 희망에 부푼 레이건 당선인은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레이건 당선인은 할리우드 배우 시절에 자신의 보스였고 정치인 변신 때 큰 도움을 준 잭 워너 워너브라더스 영화사 설립자에 대한 얘기꽃을 피웠지만 카터 대통령은 듣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리무진에서 내려 취임식장으로 가면서 카터 대통령이 보좌관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잭 워너가 누구야?”

조지아 주 땅콩농장 주인 출신으로 할리우드와 담쌓고 지냈던 카터 대통령은 레이건 당선인이 국정에 대한 의논보다 ‘시시한 연예계 잡담’에 열을 올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고 작가 조너선 앨터가 쓴 카터 전 대통령 전기 ‘최선: 지미 카터의 삶(2000년)’은 전합니다.

자서전에 따르면 카터-레이건 관계는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대통령직 인수”로 평가됩니다. 한미동맹의 상징인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할 정도로 외교적 확장보다 내치에 중점을 뒀던 카터 대통령과 대외적으로 미국의 힘을 과시하고자 했던 레이건 당선인은 대선 유세 때부터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인수 과정에서 많은 파열음이 발생했습니다. 레이건 당선인은 대선 승리 직후 “카터 행정부와는 어떤 연관성도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카터 대통령은 대선 승리 후 백악관을 첫 방문한 레이건 당선인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메모도 하지 않아 마음이 상했다고 합니다.

레이건 당선인 측은 카터 대통령에게 “일찍 방을 빼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퍼스트레이디가 될 낸시 레이건 여사는 백악관 재단장을 일찍 시작하고 싶어서 카터 대통령 부부에게 취임식 몇 주 전에 백악관에서 나가 대통령 영빈관인 ‘블레어하우스’로 옮겨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카터 대통령의 부인 로절린 여사가 불쾌하게 생각하면서 이 요청은 실현되지 않았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습니다.

개선장군이 된 듯한 레이건 당선인 측의 행동과 발언들은 무례한 측면이 있지만 당시 언론 기사들을 보면 카터 대통령의 우유부단한 정치와 침체된 경제에 실망해 있던 국민들은 오히려 환영했습니다. 레이건 당선이 확정되자 카터 대통령 시절에 크게 줄었던 정부 직책들이 다시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습니다. 너도나도 이력서를 들고 몰려들면서 워싱턴은 생기 있는 도시로 변했습니다. “장관에서 비서까지(from Secretary to secretary)”라는 유행어가 생겨날 정도로 채용 붐이 일면서 인재 풀이 확장됐습니다.

레이건 정권 인수 과정은 카터 인수위 때와 크게 달랐습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에드윈 미즈 위원장이 이끄는 레이건 인수위는 1000명의 매머드 급으로 꾸려졌습니다. 인원은 많았지만 1달러의 상징적 급여를 받는 자원봉사자들이 대거 포함돼 있어 인수위 운영비용은 인원이 절반 정도로 적었던 카터 인수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레이건 인수위는 분야별로 나눠 각종 자료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빨리 내각 진용을 채워나갔습니다. 1980년 11월 초 대선 승리 후 그 해 연말까지 7주 안에 주택도시개발부와 유엔주재 미국대사 등 2개 직책을 제외한 내각과 백악관 인선이 완료됐습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 인맥들이 중용될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워싱턴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 관리들이 대거 중용됐습니다. 덕분에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막히는 일도 거의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이런 속도전은 레이건 특유의 자유방임적 통치 스타일이 반영된 것이었습니다. ‘전임 행정부로부터 이념적 전환’이라는 대원칙 하에 레이건 당선인은 인수위에 결정권을 일임했고, 인수위는 헤리티지재단, 후버연구소 등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들과 손잡고 신속하게 인사 결정을 내렸고 정책의 밑그림을 그렸습니다.

레이건 인수위는 4년 전 카터 인수위가 지지부진한 일처리로 국민적 실망감을 준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워싱턴 정치 문화를 경험하지 못하고 조지아 주지사에서 백악관으로 직행한 카터 대통령은 주요 보직 인터뷰를 직접 진행할 정도로 꼼꼼한 성격이었습니다. 지나치게 공을 들인 결과 인수위 활동 5주가 지나도 국무장관, 백악관 예산관리국장 등 2개 직책밖에 채우지 못했습니다. 오랜 시간을 들였지만 결국 조지아 주지사 시절 인맥이 중용돼 “시골뜨기 정부”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왔습니다. 백악관을 주도하는 조지아파와 내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워싱턴파 사이에 갈등도 자주 발생했습니다.

미국은 대통령직 승계가 안정적으로 이뤄지지만 정권 인수기에 벌어지는 어느 정도의 혼란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정권 인수를 집중 연구하는 미국 싱크탱크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서로 당적이 다른 관계에서 대통령 ‘배턴 터치’가 이뤄질 때 혼란은 자주 발생합니다. 배턴을 내주는 쪽이 재선 레이스에서 실패한 것이라면 혼란은 더욱 커질 수 있습니다.

워싱턴의 유력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는 관련 보고서에서 정권 인수의 교훈을 “빨리 행동하라(act quickly)”라고 조언합니다. 인수 기간에 신속한 결정력을 집중시키는 것은 새로운 정부의 방향성에 대한 메시지를 주는 것입니다. “천천히 시간을 갖고 올바른 결정을 내린다”는 미국 정치의 오랜 격언은 적어도 정권 인수기에는 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