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아이를 도와주되 개입은 금물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아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2주가 지났지만 아이는 여전히 학교를 낯설어한다. 부모 눈에는 열심히 다니는 것은 같은데 언제나 잔뜩 긴장한 것처럼 보인다. 이럴 때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어느 날 아이가 담임교사에게 받아와야 하는 가정통신문을 못 받아왔다. 아이가 걱정을 하자 엄마는 가볍게 “내일 가서 달라고 해”라고 말한다. 아이는 “난 말 못 해. 엄마가 해”라고 한다. 그럴 때는 “네가 한번 해봐”라고 다시 말해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선생님, ○○가정통신문 주세요. 저 어제 못 받았어요”라고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도 자세히 가르쳐준다. 그런데 다음 날 아이가 또 못 받아왔다. 그러면 “선생님한테 얘기해 봤니?”라고 물어준 후 아이가 “창피해서 도저히 말을 못 하겠어”라고 말하면 “그럼, 엄마가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고 얘기를 해봐”라고 담임교사와 말을 하는 상황을 연습해본다. 아이가 “선생님” 하고 부르면 “왜? ○○야”라고 부모가 대답해준다. “못 받은 것이 있어요”라고 말해보도록 한다. 이렇게 여러 번 연습하고 가면 좀 쭈뼛거리기는 해도 아이가 해낸다.
그래도 아이가 말을 못 꺼내면 ‘쪽지’로 대신할 수도 있다. “네가 정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쪽지를 선생님한테 드리는 방법도 있어” 하면서 쪽지에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담임교사에게 건네게 한다. 아이를 이렇게 도와야 한다. 부모가 바로 담임교사에게 전화를 걸거나 메시지를 보낸다면 상황은 간단하게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문제는 해결되지만 아이가 해결한 것이 아니다. 부모가 한 것이다. 아이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에는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은 조급함도 있지만, 담임교사 앞에서 내 아이가 쭈뼛거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아이를 돕고 싶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담임교사와의 상호작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부모는 될 수 있는 한 몇 걸음 물러서서 아이가 조금이라도 교사와 상호작용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심각한 질병이 있지 않은 이상 아이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스스로 노력한다. 부모는 이 노력을 잘 도와주면 된다. 걱정하고 염려하고 같이 의논하고, 조언도 해주고, 같이 해결할 방법도 찾는 것이 도움이다.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를 돕는 것을 돕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혹 부모 선에서 그런 도움을 줄 수 없을 때는 전문가를 찾으면 된다. 부모가 안쓰러운 마음에 아이의 문제를 나서서 해결해버리면 오히려 아이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키워가는 것을 방해하는 꼴이 된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자라면서 혼자 겪어내야 하는 스트레스들을 잘 대처해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극단적인 스트레스는 최대한 겪지 않도록 해줘야겠지만 다른 정상적인 스트레스는 아이가 직접 겪어나가도록 해야 한다.
아이의 스트레스에 자꾸 개입하는 부모들은, 아이들의 스트레스는 무조건 나쁜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없애주고 싶은 것이다. 없애려고 하다 보니 너무 많이 개입해버린다. 이런 부모는 아이가 괴로워하는 것을 지나치게 못 본다. 아이가 불편하고 괴로워하는 것인데, 그것으로 인해 생기는 부모 본인의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쩌면 부모도 감정을 다루는 정서 발달이 잘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누구나 아프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이로써 성장하기도 한다. 인간에게는 스트레스를 이겨내게 하는 시스템이 이미 유전자에 마련되어 있다. 완성되어 있지 않지만, 신도시를 만들 때 지적도를 보면 이곳은 학교 부지, 이곳은 육교 세울 곳이라고 위치가 표시되어 있는 것처럼 아이도 그런 것을 잘 처리할 수 있도록 시스템 자체가 내재화되어 있다. 부모는 그것이 잘 활성화될 수 있도록 도우면 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안타까움에 아이의 일에 자꾸 선을 넘게 된다. 나서서 해결해주고 싶은 마음이 그것이다. 도와주는 것은 맞지만 대신 해결해주는 것은 안 된다. 아이의 스트레스는 아이 것이다. 아이 것과 내 것, 아이 책임과 내 책임의 경계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아이를 위한 일이고 결국엔 부모를 위한 일이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