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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아동문학, 다양한 주제 깊게 다뤄… 美-유럽 100년 성과 따라잡아

입력 | 2022-03-23 03:00:00

국내작가 해외문학상 수상 잇달아… 외국선 “성인들도 읽어볼만” 호평
수입-번역 의존하던 출판계 반전, 유럽 판권계약 이어져 수출 봇물
작가들 긴 제작기간 경제적 부담 “창작-해외홍보비 지원 정책 절실”




“유럽과 영미 아동문학이 100년 동안 쌓은 수준을 빠르게 따라잡아 이젠 해외 서점 아동문학 상위권을 한국 작품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박지은 비룡소 편집주간은 22일 이렇게 말했다. 번역 문턱이 높은 성인 문학, 영미권 중심인 인문 과학 등 학술 분야 도서와 달리 한국 아동문학이 해외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이다. 박 주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외 작품들을 수입하기 바빴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다”며 “책의 내용, 그림 수준 등 어느 것도 뒤처지지 않게 한국 아동문학이 발전한 덕이다”고 했다.

이수지 작가(48)의 안데르센상 수상을 계기로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는 한국 아동문학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아동 분야 도서저작권 수출은 2019년 1158건으로 2017년(565건)에 비해 2배로 늘었다. 2020, 2021년 현황은 아직 집계되지 않았으나 출판계에서는 수출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올해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을 수상한 이 작가의 그림책 ‘여름이 온다’(2021년·비룡소)는 중국,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이탈리아까지 모두 5개 국가 출판사와 판권 계약이 체결됐다.

세계에서 한국 아동문학이 인기를 끄는 건 교육열이 높은 한국 시장에서 살아남은 질 좋은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2018, 2019년 도서저작권 수출에서 그림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39.7%로 문학책(13.3%)의 3배 가까이 된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성인 문학과 달리 아동 문학은 글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어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기에 유리하다”며 “이야기가 보편적인 정서를 다룬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했다.

해외에선 잇달아 한국 작가들의 수상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그림책 ‘구름빵’(2004년·한솔교육)으로 유명한 백희나 작가는 2020년 세계적인 아동문학상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받았다. 지난해 이명애 작가는 ‘내일은 맑겠습니다’(2020년·문학동네)로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BIB) 황금사과상을, 이지은 작가는 ‘이파라파 냐무냐무’(2020년·사계절)로 볼로냐 라가치상 코믹스-유아 그림책 부문을 받았다. BIB와 라가치상은 안데르센상과 함께 세계 3대 그림책상으로 꼽힌다.

해외에서 한국 아동문학은 어른들이 읽어도 좋은 작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내용이 깊고, 다루는 주제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올해 볼로냐 라가치상 논픽션 부문에 뽑힌 최덕규 작가의 그림책 ‘커다란 손’(2020년·윤에디션)은 나이 든 아버지와 갓난아기인 아들을 함께 돌보는 중년남성이 주인공이다. 22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볼로냐국제도서전에 참가하고 있는 최 작가는 “해외 출판사들이 판권 계약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그림책이지만 해외에선 성인들이 읽을 작품으로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아동문학이 세계로 더 많이 뻗어나가기 위해선 유명 작가뿐 아니라 신인 작가를 키우려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그림책 제작에는 최소 6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이 걸려 유명하지 않은 작가는 생활고 때문에 작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작가들에게 창작지원금과 창작 공간을 비롯해 해외 출판사용 포트폴리오 제작을 지원하는 등 정부가 다각도로 나서 척박한 창작 환경을 개선해야 한국 아동문학이 더 크고 다양하게 꽃을 피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