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딜롱 르동 ‘키클롭스’, 1914년경.
외눈박이 거인이 바위산 뒤에 숨어 있고, 꽃이 핀 산비탈에는 나체의 여인이 누워 있다. 이 인상적인 그림은 프랑스 상징주의 화가 오딜롱 르동의 말년 대표작이다. 가장 시선을 끄는 부분은 기괴하게 큰 거인의 눈이다. 위협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불안해 보이기도 하는 눈빛이다. 거인에게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르동은 인상파 화가들과 동시대를 살았지만 그들처럼 일상을 포착해 그리기보다 꿈이나 잠재의식 등 화가의 내면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는 요정이나 괴물 또는 상상 속 인물들이 사는 꿈의 세계를 종종 그렸는데, 이 그림 역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키클롭스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호메로스가 쓴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키클롭스는 외눈박이 거인족이다. 포세이돈의 아들인 폴리페모스가 키클롭스의 수령이었다. 그는 무식하고 오만불손한 데다 신들에 대한 경외심도 일절 없는 무법자였다. 하지만 심장은 누구보다 뜨거웠다. 그림에서 폴리페모스는 높은 산 뒤에 숨어서 바다의 님프 갈라테이아를 훔쳐보고 있다. 아름다운 님프는 벌거벗은 상태로 꽃으로 뒤덮인 산비탈에 잠들어 있다. 세상 두려울 것 없는 천하의 폴리페모스였지만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는 수줍은지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문제는 갈라테이아가 사랑하는 대상이 그가 아니라 열여섯 살 미소년 아키스였다는 점이다. 포악한 성품이 어디 갈 리가 있을까. 갈라테이아가 아키스와 함께 있는 것을 본 폴리페모스는 격분한 나머지 바위로 아키스를 죽여 버렸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