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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우 포탄 뚫고 시민 구출 나선 유대교 회당 [사람, 세계]

입력 | 2022-03-24 03:00:00

러軍 포위지역 차량 보내 구해
랍비 “눈으로 본 광경 믿을 수 없어”




러시아군의 포격이 언제 재개될지 몰라 통금령이 내려진 18일 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한 유대교 회당 앞.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흰색 승합차 10여 대가 회당 앞에 속속 멈춰 섰다. 차문이 열리자 아이들의 손을 잡은 사람들이 줄지어 내렸다. 러시아군에 포위된 북부 도시 체르니히우에 숨어 지내던 시민들이었다.

11세, 14세 두 딸과 함께 온 한 여성은 불 켜진 회당 안을 감격스러운 듯 바라봤다. “기적 같아요.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불빛을 보지 못했어요. 지하에 어른 148명과 아이 26명이 화장실 1개를 나눠 썼어요. 약도, 음식도, 전기도 없고요. 중세로 돌아간 듯했어요.”

휠체어에 탄 노모를 모시고 온 40대 남성은 “포격이 시작되면 바닥에 엎드려 ‘우리 집만은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고 했다.

키이우에서 두 번째로 큰 유대교 회당인 브로즈키 회당(사진)은 마리우폴 등 러시아군에 포위되거나 초토화된 지역에 차량을 보내 시민들을 실어오는 아찔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시민들의 기부금이 차량과 운전기사를 구하는 데 쓰인다. 버스 한 대당 약 2만 달러(약 2400만 원)가 소요되는데 현재까지 약 200만 달러(약 24억 원)가 사용됐다.

1898년에 설립된 브로즈키 회당은 그동안 숱한 수모를 겪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키이우를 점령한 나치 독일은 이 건물을 무너뜨렸고, 1970년대 이후엔 소련의 인형극 극장으로 쓰였다. 2000년에야 재건된 이 회당은 이번 전쟁에서 종교를 초월해 러시아군에 포위된 시민들에게 ‘구출 버스’를 보내는 전초기지로 자리매김했다. 회당 최고 랍비인 모셰 아즈만 씨는 “내 눈으로 직접 보는 이 광경조차 믿을 수 없다. 악몽인가 싶어 꼬집어 봐야 할 정도”라고 워싱턴포스트(WP)에 전했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