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천연가스 관련 결제를 자국 통화인 루블화로만 받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 오히려 러시아에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3일(현지시간) 타스통신과 리아노보스티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정부 회의에서 “소위 비우호국에 공급하는 우리 천연가스 대금 결제를 러시아 루블로 전환할 것”이라며 다른 통화 사용을 그만두겠다고 밝혔다.
앞서 러시아는 자국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미국과 서방 중심의 제재가 뒤따르자 제재 동참국 48곳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했다. 여기에는 제재를 주도하는 미국과 영국 등 서방 국가는 물론 한국도 포함돼 있다.
푸틴 대통령은 모스크바가 기존 계약에 따라 가스 계약을 계속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 국가들은 반발했다. 로버트 하벡 독일 경제장관은 푸틴 대통령의 요구가 계약 위반에 해당한다고 강조했고, 독일이 유럽 파트너들과 대응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폴란드 정부의 한 고위 소식통은 CNBC에 “이는 현행 계약에 포함된 지불 규정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폴란드는 현재 장기 계약이 올해 말 만료되면 (러 국영 가스업체)가즈프롬과 새 계약을 체결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WSJ는 대부분의 글로벌 상품 거래는 달러로, 또는 유로로 이뤄지며 러시아가 어떻게 가장 큰 고객들에게 변화를 강요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러시아에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라이스타드에너지 컨설팅 회사의 비니시우스 로마노 분석가는 “루블 지불을 고집하는 것은 러시아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하는 것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에너지 구매자들이 루블로 지불을 전환하더라도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이미 러시아는 통화 수요 창출을 위해 달러와 유로로 지불하는 회사에 매출의 80%를 루블로 교환하도록 요청했다. WSJ는 “루블화 지원의 부담을 중앙은행이나 기업이 아닌 러시아 고객에 돌리는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 발언 이후 러시아 루블화는 7% 상승해 달러당 98루블에 거래됐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제이슨 투비 선임 신흥시장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조치가 폭락한 자국 통화 가치를 복원하고 러시아의 서구 금융 인프라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궁극적으로 러시아가 자급자족 쪽으로 계속 표류할 것이라는 생각을 강화시킬 뿐”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