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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뽕 원료 먹여 여성 성폭행’ 약사 징역 4년…‘GBL 데이트 강간’ 첫 유죄

입력 | 2022-03-24 16:54:00

뉴스1


‘버닝썬’ 사건을 통해 ‘데이트 강간 약물’로 알려진 감마하이드록시낙산(GHB·속칭 ‘물뽕’)의 원료인 감마부티로락톤(GBL)을 사용해 여성을 성폭행한 사례에 대한 최초의 형사 유죄 판결이 나왔다. 지난해 11월 동아일보 보도로 GBL이 체내에서 물뽕과 같은 효과를 발휘하지만 마약류로 지정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진 뒤 4개월 만에 나온 판결이다.

24일 수원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황인성)는 강간상해 등 혐의로 기소된 약사 A 씨(36·수감 중)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며 5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에 취업할 수 없고 4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을 수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A 씨는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고소득 사업가 등만이 가입할 수 있는 한 소개팅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지난해 2월 피해 여성 B 씨를 만났다. A 씨는 B 씨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술잔에 물뽕의 원료 GBL을 탔다. GBL은 물뽕을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원료물질로, 체내에 들어가면 물뽕으로 변환된다. 이 같은 특성을 알고 있던 A 씨는 같은 방법으로 지난해 3월에도 다른 여성 C 씨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이후 수원지검 수사팀은 A 씨가 GBL을 사용한 것을 밝혀내 물뽕을 사용한 데이트 강간 혐의로는 최초로 구속 영장을 발부 받았다.

데이트 강간에 물뽕을 사용해 형사처벌을 받은 것은 A 씨 사건이 처음이다. GBL과 물뽕 모두 1~4시간 만에 체내에서 분해되기 때문에 그간 검출이 불가능했다. 증거가 없어 지금까지 물뽕이나 GBL을 사용한 ‘데이트 강간’ 혐의로 처벌받은 사례는 한 건도 없었던 것.

GBL은 체내에서 물뽕보다 더 큰 효과를 내지만 지난해 GBL은 마약류로 지정되어 있지 않아 성범죄에 이용해도 마약류관리법에 의한 처벌이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A 씨도 마약류관리법에 대한 처벌은 받지 않았다. 이 같은 지적이 나오자 식약처는 올 1월 GBL을 1군 임시마약류로 새로 지정해 GBL을 수출입·제조·매매·매매알선·수수하는 경우 마약류관리법에 따라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지도록 했다.

재판부는 A 씨에 대해 “피고인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피해자들과도 합의해 이들이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A 씨는 약사로서 마약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음에도 자신의 지식을 이용해 범죄를 계획하는 등 죄질이 나빠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