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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헌재 판결에도… 양심적 병역거부자 자격증 박탈하겠다는 문체부

입력 | 2022-03-24 17:05:00



문화체육관광부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10년 전 병역법 위반 사실을 뒤늦게 문제삼아 체육지도자 자격을 취소했다가 1심에서 “위법한 처분”이란 판결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럼에도 문체부가 법원 판단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법조계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한 불이익을 금지한 2018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취지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 10년 전 유죄 선고 이유로 체육지도자 자격 박탈한 문체부


24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12월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정상규)는 A 씨가 문체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문체부가 A 씨의 2급 생활스포츠지도사 자격을 박탈한 처분은 위법해 취소해야 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 씨는 2012년 10월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병역법 위반)로 징역 1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아 2014년 5월 출소했다. 이에 앞서 A 씨는 필기시험과 연수 등을 거쳐 판결이 선고되기 두 달 전 수영 강사(2급 생활스포츠지도사) 자격을 취득했다. A 씨의 범죄기록은 형을 마치고 5년이 지나면 형의 효력을 없애는 형실효법 조항에 따라 2019년 5월 말소됐다.

하지만 2020년 문체부는 A 씨가 형을 살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고 자격을 취소시켰다. 형기를 마친 지 6년여가 지난 A 씨가 국민체육진흥법이 규정하는 자격취소 사유인 ‘실형을 선고받고 형 집행이 종료된 후 2년이 경과되지 않은 사람’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문체부는 “국민체육진흥법은 (형 집행이 종료된 날로부터 2년이 아니라) 형 집행이 종료된 것을 ‘문체부가 알게 된 날로부터’ 2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 자격을 취소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형이 효력을 상실했다는 사실은 자격 취소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형실효법에 따라 A 씨에 대한 징역형 선고의 효력은 형을 마친 지 5년이 지난 2019년 5월 이미 상실돼 자격 취소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문체부처럼 법을 해석하는 것은 법률 문언에 부합하지 않고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저해해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체부가 “재판부 판단과 다른 판례도 있다”며 항소해 A 씨는 서울고법에서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 법조계 “대법·헌재 판결 취지 거스르는 것”


법조계에서는 문체부의 처분과 항소 결정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불이익을 금지한 헌재와 대법 전원합의체 판결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앞서 2018년 6월 헌재는 대체복무 규정이 없는 병역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최소 1년 6개월 이상의 징역형과 그에 따른 (복역 이후) 공무원 임용 제한 및 해직, 각종 면허 상실과 취업 곤란 등 막대한 불이익을 감수해왔다”는 이유를 들었다. 같은 해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 등 제제를 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비롯한 헌법상 기본권 보장체계와 전체 법질서에 비춰 타당하지 않고,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에도 위배된다”고 판시했다.

지난해 10월 국민권익위원회가 행정심판을 통해 A 씨와 유사하게 양심적 병역거부로 발생한 전과를 이유로 체육지도자 자격증을 취소한 문체부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한 사례도 있다. 권익위는 2016년 양심적 병역거부로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사면·복권된 B 씨의 체육지도자 자격증을 2020년 박탈한 문체부의 처분을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법무부가 2018년 헌재와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공무원 임용 제한 등 각종 자격 제한”을 방지하기 위해 형이 실효되지 않은 양심적 병역거부자 1879명을 2019년 12월 특별 사면한 의도와도 어긋난다. 이에 행정부처를 상대로 한 모든 소송을 지휘하는 법무부가 항소 포기 지휘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 이끈 변호사 “이제는 인권침해 없어야”


어린 시절 수영선수 생활을 했던 적이 있는 A 씨는 현실적 여건상 수영은 취미로만 계속하고 복역 전부터 현재까지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A 씨는 2011년 어릴 적 꿈을 살릴 방법을 찾다 나중에 수영 강사로 일할 계획을 가지고 체육지도자 자격을 취득했다고 한다. A 씨는 “퇴근 후 저녁에 매일 공부하고 회사 점심시간을 이용해 연수를 받는 등 약 1년간 준비한 끝에 원하던 자격을 취득했다”고 설명했다.

A 씨는 2020년 8월 처음 자격이 취소될 수 있다는 문체부 통보를 받았을 때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A 씨는 “당시 사정을 알아보니 자격 취소 처분을 받은 다른 사람들은 성 문제나 폭력, 음주운전, 살인, 사기 등으로 복역한 경우가 많았다”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여전히 좋지 않게 보는 분들도 있다는 건 알지만, 이제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공식적으로 인정된 나라에서 그런 죄들과 다르게 고려해주지 않은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A 씨를 대리하는 김진우 변호사는 “2018년 헌재 결정과 대법 판결은 그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과 그에 따른 제재로 인권침해가 반복되는 현실에 대한 반성적 고려에서 나왔다”며 “적어도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헌법상 권리로 확인된 이후에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어떤 기본권 침해도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본인도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김 변호사는 2018년 처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 대법 판결 당시 피고인 측 변호를 맡았다.

이에 대해 문체부는 24일 동아일보에 “A 씨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사실은 항소 결정에 고려하지 않았다”며 “단지 대법원 판례가 갈리고 있어 법 해석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다시 구해보자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박상준 기자speak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