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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초원복집 사건’ 판례 25년만에 변경… “영업주 허락받고 출입, 주거침입죄 아냐”

입력 | 2022-03-25 03:00:00

‘음식점에 몰카 설치’ 무죄 판결
“사실상의 평온상태 침해 해당 안돼”
1997년엔 도청 폭로 후보측에 유죄




음식점에 영업주의 허락을 받고 출입했다면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1992년 제14대 대선 직전 정부 기관장 등이 모여 지역 감정을 부추기려 한 사실이 도청으로 드러난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에 적용된 법리가 25년 만에 변경된 것이다.

24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된 화물운송업체 부사장 A 씨와 팀장 B 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두 사람은 2015년 회사에 불리한 기사를 쓴 기자에게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한 뒤 중식당과 일식당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두 사람에게 각각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몰래카메라 설치 목적으로 음식점에 들어간 것은 영업주의 의사에 반한 것이므로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2심의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각 영업주의 승낙을 받아 음식점에 들어갔다”며 “몰래카메라 설치 목적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출입행위가 영업주의 의사에 반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피고인들이 방 안에서 몰래 촬영한 것은 당사자 간 대화인 만큼 타인 간 대화 녹음을 금지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니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11명의 다수의견 등을 통해 2심 판단이 옳다고 판단했다. 영업주의 승낙을 받은 만큼 주거침입죄 요건인 ‘평온 상태의 침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영업주가 피고인들의 실제 출입 목적을 알았으면 출입을 승낙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더라도 그런 사정만으로 평온 상태가 침해됐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따라 기존 대법원 판례도 변경됐다. 초원복집 사건은 1992년 대선 직전 당시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이 부산시장 등 지역 인사들을 모아 놓고 김영삼 전 대통령 당선을 위한 방안을 논의한 사건이다. 대화를 정주영 후보 측이 몰래 녹음해 폭로했는데, 이후 영남표가 결집됐고 결국 김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된 정 후보 측 선거운동원들은 1997년 대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