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그렇게 하루 이틀은 홀가분하게 보냈다. 차분하게 일을 하고, 중간중간 여유 있게 커피를 마셨다. 삼일째가 되니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밖에 나가고 싶다는 문제가 아니었다. 충분히 할 일이 많았음에도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생기도, 즐거움도 없이, 다른 사람, 다른 공간과의 화학 작용도 없이, 그저 혼자서 혼자만의 일을 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노인이 된 것처럼 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이상하게 아내에게도 당당해지지가 않아서 갑자기 순한 남편이 되었다. 평소보다 더 열심히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도 돌렸다. 이상하지. 실직을 한 것도, 기가 팍 꺾일 만큼 큰일이 닥친 것도 아닌데 자동적으로 쪼그라들었다. 아무 약속도 없이, 엿가락처럼 늘어진 하루를 그렇게 원했으면서도 막상 그날이 오니 재미있게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보통의 하루를 무난하게 보내지 못하다니 어쩌려고 이러나, 언젠가 은퇴를 해 ‘뒷방’에 앉아있을 날이 많아지면 어쩌려고, 하는 위기감이 뭉근하게 차올랐다.
내일이면 자유인데 뭔가 찜찜하다. 너는 어떤 사람이니?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뭐니? 하는 물음은 돌직구처럼 느닷없이 날아왔는데 미처 속 시원히 답을 못 하고 어영부영 다시 무대로 올라가는 기분이랄까? 경보 선수처럼 매사에 ‘달리는’ 인생으로 살다 보니 그 속도와 가학이 몸에 배어 모처럼 한가해지니 좀이 쑤시고 급기야 이건 좀 무료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 셈이니 뭔가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코로나는 그렇게 나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나름 선명하게 판정을 내렸다. ‘내가 보기에 인간은 쉴 수 있는 사람과 쉴 수 없는 사람으로 나뉘는데 넌 전자다!’라고. 쉴 수 있어야 생각도 자라고, 사람도 자라는데 지금처럼 별 생각 없이 하루하루 일만 하다 끝나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서 제일 크고 막막하고 깊고 모호한 ‘공간’이 사람 마음속 아닐지. 더 늦기 전에 들여다봐야 할 것 같은데 그것이 문제로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