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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정은]두 번 서러운 문과생

입력 | 2022-03-26 03:00:00


“미적분 하냐?” 수학 좀 한다는 중학생들이 서로의 선행학습 진도를 확인할 때 으스대듯 묻는 질문이다.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이 ‘신이 사용하는 언어’로 불렀다는 미적분은 수학 레벨이 높아졌음을 확인하는 대표 과목으로 여겨진다. 반면 수학을 싫어하는 이들에게는 엄두를 내기 어려운 고등수학의 문턱이기도 하다. 문·이과 통합형 수학능력시험에서는 문과생들을 기죽이는 선택 과목 중 하나다.

▷올해 수능도 문·이과 통합형으로 치러진다. 융합형 인재를 양성한다는 취지로 지난해에 처음 실시한 이후 2년째 이어지는 것. 문·이과 구분 없이 실시한 지난해 시험에서는 수학을 잘하는 이과생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했다. 이과생들이 주로 선택하는 ‘기하’나 ‘미적분’의 표준점수가 문과생들이 응시하는 ‘확률과 통계’보다 높았다. 수학 조정점수를 높게 받은 이과생이 상위권 대학의 인문계 학과를 교차지원하면서 문과생을 밀어내는 ‘문과 침공’ 현상이 두드러졌다.

▷교육당국은 이런 문·이과 유불리 현상에 대해 “완전히 극복되긴 어렵다”고 했다. 올해도 ‘문과 침공’이 반복될 가능성을 막을 길이 없다는 말이다. 문과생들은 울상이다. 가뜩이나 ‘문송’(문과여서 죄송합니다) 분위기를 절감하고 있는데 이제는 취업에 앞서 입시에서까지 이중의 설움을 겪게 됐다. 정치학자를 꿈꾸던 문과 우등생이 막판에 이과로 갈아타는 등 진로를 바꿨다는 소식에 교사들은 한숨을 쉰다. “수학만이 살길”이라는 학생과 학부모의 수요에 맞춰 신도시에는 줄줄이 새 학원들이 들어서고 있다.

▷문과생들은 “한쪽에만 유리하도록 돼 있는 입시제도는 부당한 특혜”라며 반발하고 있다. 수학 등 선택과목의 조정점수 산출 공식이 잘못됐다며 소송 절차를 알아보는 학부모들도 나왔다. ‘문과 침공’이 이과생들에게도 좋은 것만은 아니다. 대학 간판을 높여서 다는 대신 적성에 맞지 않는 학과 공부를 감내해야 한다. 자연계열로 전과하거나 반수를 결심한 대학생들은 결국 올해 하반기부터 다시 재수학원으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이공계 침공자들에게 밀려 이미 재수의 길을 걷고 있는 문과생들이 있는 그곳이다. 양쪽 모두에게 낭비다.

▷과학·기술·엔지니어링·수학을 뜻하는 이른바 스템(STEM) 분야의 육성이 이미 몇 년 전부터 지속돼온 세계적 흐름인 것은 맞다. 빛의 속도로 진행되는 첨단기술 개발 경쟁은 수학적인 사고와 과학 역량을 요구한다. 이런 판 위에서 인문학을 읊조리고 있는 게 한가한 소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수학, 과학 점수만 능력인가. 창의적 사고와 문학적 감성,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문계의 강자들은 정보기술(IT)기업에도 똑같이 필요하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