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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운전대를 직접 잡는다는 것의 의미

입력 | 2022-03-26 03:00:00

◇운전하는 철학자/매슈 크로퍼드 지음·성원 옮김/448쪽·1만8000원·시공사




관점이 독특한 책이다. 자동차 운전이라는 행위가 지닌 능동적 인간성의 가치를 설파했다. 집필 계기는 자율주행 자동차의 등장이다. 저자는 자율주행차가 인간을 수동적 승객으로 만들고 말 것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차에 자율주행 기능이 적용되면 인간이 직접 운전대를 돌리고 경로를 선택하며 느끼는 스릴, 재미, 자율성이 말살되며 새로운 윤리적 문제까지 직면하게 되리라는 게 저자의 경고다.

예컨대 사고가 불가피한 비상 상황에서 자율주행차의 인공지능(AI)이 보행자와 다른 자동차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때 해당 선택에 대한 도덕적 책임이 인간이 아닌 AI에 전가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 AI에게 보행자나 상대방 운전자는 하나의 인격체라기보다는 위험요소로 인식될 뿐이다.

정치철학 박사인 저자는 모터사이클 정비사로 운전광이다. 자신의 다양한 운전 경험과 자동차 공학 지식을 생생하게 풀어낸다. 자율성과 관련된 여러 심리실험 결과나 사회적 고찰까지 섞어내 마치 에세이와 인문서, 공학 책과 취미 잡지를 절묘하게 붙여 놓은 인상을 준다. 내용과 형식 모두 흥미롭다. 저자는 자동차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특별한 공간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뇌는 스스로 이동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에 대한 인지지도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3분의 1은 자신의 차에 인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눈길 가는 대목에도 불구하고 몇 장 들춰 볼 때 그럴듯하던 소재와 주제가 제한된 몇 가지 맥락 사이에서 반복되는 건 아쉽다. ‘자율주행은 인간성을 말살할 것’이라는 주제에 기대 저자 자신의 지식과 취미를 한껏 드러낸 인상이 짙다. 나선 절삭형 기어의 회전방향을 논하거나,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크루즈의 산길을 달리는 쾌감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그렇다. 현학적 원문을 거의 그대로 옮긴 번역도 독자에 따라서는 다소 거슬릴 수 있을 것 같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