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메티의 거대한 여인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196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알베르토 자코메티
여러분 안녕하세요.
작년 리움미술관이 오랫동안 멈추었던 기획전시를 다시 시작하면서 주목을 받았었는데요. 이 때 열린 전시 ‘인간, 7개의 질문’을 보고 싶었는데 예약 전쟁에서 밀려 기회를 놓친 분들이 제 주변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전시가 순회전으로 전남도립미술관에서 다시 재구성되어 열리고 있다고 하네요.
이불, 루이스 부르주아, 이브 클랭, 앤디 워홀, 브루스 노만 등 흥미로운 작품들이 다시 관객에게 공개된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딱 한 작품이 포함되었지만 이 전시에서 가장 주목 받을 만하다고 생각되는 작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에 대해 오늘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자코메티는 그동안 한국에서 작품의 높은 가격과 독특한 형태로만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여인’과 같은 모습이 나오기까지는 피나는 노력과 스스로를 믿고 견뎌내야만 하는 암흑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영감한스푼’은 미술관에서 얻을 수 있는 영감에 대해 이야기를 해 왔는데요. 오늘은 자코메티가 어떻게 영감을 얻었는지와 더불어 그 영감이 결실을 맺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영감 한 스푼 미리 보기: 맞지 않는 과거의 틀을 깨고 나오려는 노력의 결실
알베르토 자코메티
1. 예술가의 아들로 태어난 자코메티는 원근법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미술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2. 그러나 파리의 아방가르드 예술과 유럽을 벗어난 지역의 고대 미술을 보면서 점점 자신이 배워왔던 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3. 어릴 때부터 배워 온 틀을 벗어나려는 치열한 노력과 암흑의 시간 끝에 자코메티의 인체 조각상은 탄생할 수 있었다.
○ 가늘고 긴 조각상은 외로운 사람일까?
알베르토 자코메티, 거대한 여인 III, 1960년
위 작품이 바로 전남도립미술관에 가면 볼 수 있는 자코메티의 ‘거대한 여인’입니다. 자코메티의 조각이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대표적인 작품 중에 하나죠. 자코메티가 이러한 형태의 조각을 처음 선보인 것은 1948년, 미국 뉴욕의 피에르 마티스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였습니다.
이 전시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자코메티는 이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도 개인전을 여는 등 주목받는 작가가 됩니다. ‘거대한 여인 III’이 1960년 작품이니 자코메티 특유의 스타일이 무르익었을 무렵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겠네요. 당시 사람들은 자코메티의 작품에서 어떤 매력을 느꼈던 걸까요?
남겨진 기록에서 찾을 수 있는 단서 하나는 바로 ‘실존주의’입니다. 자코메티가 1948년 뉴욕에서 전시를 했을 때,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도록에 글을 써주었습니다.
사르트르는 자코메티의 작품이 실존주의 철학을 표현하고 있다고 봤는데요. 그가 말했던 실존주의 철학은 ‘인간의 실존은 연약한 것이며, 죽음에 의해 언제든지 중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인간을 신과 가장 가까운 창조물로 보았다면, 이 시기에는 인간 또한 죽음을 마주해야 하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실질적은 삶을 살아가자는 취지도 있을 것입니다.
사르트르는 자코메티의 조각상에서 보이는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위태로움을 실존주의 철학과 연결시킵니다. 실존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인들이 겪은 문명과 지성에 대한 환멸을 담고 있지요. 자코메티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인간 존재의 연약함을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또 도시에서 겪을 수 밖에 없는 고독과 소외를 표현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코메티가 이 작품에 붙인 제목, 바로 ‘거대하다’는 형용사에 있습니다. 작품 제목에 ‘거대함’을 붙였다는 것 또한 그것이 위태롭거나 약한 존재는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이 되죠. 자코메티 또한 사르트르와 절친하게 지냈지만, 자신의 작품이 ‘실존주의’나 ‘외로움’만을 표현한 것은 아니라고 부인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작품 ‘광장’(City Square)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매 순간 사람들은 무리지어 가거나 흩어진다. . . 남자들은 서로를 쳐다보지 않고 지나치거나, 여자를 쫓아 가기도 한다. 한 여자가 서있고, 네 남자는 각기 다른 방향에서 여자가 있는 곳 언저리를 향해 걷는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광장, 1948/1949년
네, 자코메티의 말은 위 작품의 겉모습을 그대로 묘사한 것인데요. 이 작품에서 팔을 붙이고 있는 사람은 여성, 팔을 벌리고 걷는 사람은 남성이라고 합니다. 자코메티는 즉 자신의 작품이 외로움이라는 감정 하나를 표현하기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패턴’을 자신만의 시각 언어에 담아냈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속에는 외로움도, 불안도, 연약함도 있겠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을 껴안고도 바닥을 딛고 우뚝 선 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겠지요. 그래서 자코메티는 여인상에 ‘거대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인 것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자코메티의 가느다란 조각상이 나오기까지의 과정 때문인데요. 그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 손을 대면 먼지가 될 것 같은 사람
자코메티, 숟가락 여인, 1926년
위 작품은 자코메티가 본격적인 조각가로 활동을 시작할 무렵 발표한 초기 작품입니다. ‘숟가락 여인’이라는 제목처럼 조각상의 배 부분이 숟가락을 연상케 하는 모양인데요.
스위스에서 예술가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그림과 조각에서 재능을 보였던 자코메티는 아버지의 권유로 프랑스 파리로 향합니다. 당시 아방가르드 예술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자코메티는 유럽 예술뿐 아니라 식민지 개척으로 수입된 아프리카의 다양한 조각품들을 만나게 됩니다.
위 작품 또한 아프리카의 댄(Dan) 부족이 사용하던 숟가락의 형태에서 영감을 얻은 것입니다. 비슷한 시기 아프리카 목조각의 영향을 받은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가 바로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이죠.
학교에서 배웠던 것과 전혀 다른 문명의 시각언어를 자코메티는 스펀지처럼 흡수합니다. 여기다 당시 파리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초현실주의 작가들을 만나면서 무의식의 세계에도 눈을 뜨게 되지요. 자코메티가 살면서 받은 새로운 자극들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허공을 잡고 있는 손, 1934
이 작품은 자코메티가 초현실주의 예술과 결별한 직후 만든 것입니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것’은 인간의 무의식을 의미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자코메티가 고대 이집트 예술의 영향도 많이 받았음을 감안한다면 또 다른 의미가 보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어도 그가 가졌던 기억과 성격, ‘바’(ba)는 계속해서 살아간다고 믿었습니다. 이 ‘바’가 고대 이집트 예술에서는 새로 표현됩니다.
위 사진에서는 볼 수 없지만 이 작품 속 인물이 앉아있는 의자의 오른쪽 팔걸이에 새 머리 모양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즉 이집트인들이 믿었던 상징 세계를 자코메티가 차용하고 있는 것으로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자코메티는 실제로 고대 이집트 그림이 자신에게는 가장 사실적으로 느껴진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유럽 미술에서 말하는) 리얼리즘은 엉터리다. 우리들이 정형화되어 있다고 말하는 스타일들이 사실은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시각을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해준다. 즉 많은 이들이 ‘사실적이지 않다’고 하는 비잔틴, 유럽 중세 미술, 중국 미술 등이 내겐 가장 현실을 닮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중에서도 이집트 예술이 가장 사실적이다.”
자코메티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자신이 배웠던 원근법 중심의 예술도, 파리에서 시도한 초현실주의 예술도 자코메티 개인이 세상을 보고 느끼는 감각을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자신과 만났다가 헤어져 집에 가는 친구를 보다가 영감을 얻습니다. 길을 걸어갈수록 친구가 멀어져 조그맣게 보이는데도 자코메티는 여전히 그 사람이 내 친구임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번뜩이는 영감이 다가온 순간, 자코메티의 ‘먼지처럼 작은’ 조각이 탄생하게 됩니다.
초소형 조각 작품을 만들고 있는 자코메티
이 무렵 그의 작품들은 아주 조그맣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자신의 감각에 더 집중하기 위해 모델을 두고 조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 의존해 조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그의 연인과 가족이 하루종일 모델을 서주곤 했습니다.) 심지어 바늘, 콩과 비슷한 크기로까지 줄어들었는데요. 자코메티는 이 작은 사이즈의 조각 작품들과 씨름하기에 이릅니다.
“모델을 보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 의존하니 조각의 사이즈는 점점 작아졌다. 사이즈가 작을 때에만 내가 본 감각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큰 사이즈에서 시작해도 결과는 같았다. 큰 조각은 틀린 것처럼 보였고, 작은 조각은 불만족스러웠다. 너무 작아져서 나이프로 한 번 건드리면 먼지가 되어 사라질 지경이었다.”
자코메티가 자신의 감각을 표현할 방식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동안 유럽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립니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자코메티는 입대 신청을 했지만 1년 전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게 되어 거절당합니다.
1940년 독일군이 프랑스로 쳐들어왔을 때 그는 결국 고향인 스위스로 피신했습니다. 그리고 1945년 9월 그는 성냥갑 6개를 들고 파리로 돌아옵니다. 그 속에는 스위스에서 만들었던 초소형 조각이 가득했습니다.
이 때 자코메티는 작품도 거의 팔지 못해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며 생활했습니다. 크고 가느다란 조각이 탄생하기까지 무려 9년이 걸렸습니다. 이 시간은 자코메티가 자신의 감각을 보편적인 언어로 갈고 닦기까지 필요했던 암흑의 세월인 셈입니다.
○ 흔들리는 가운데 우뚝 선 사람
1962년 자코메티
새로운 형태를 위해 분투하던 자코메티에게 또 한 번의 영감의 순간은 찾아왔습니다. 1946년 흑백 뉴스 화면을 보던 자코메티는 뉴스의 내용이 아니라 브라운관 표면에 집중을 합니다. 거기서 “평평한 표면 위에 흰색 점과 검은 점이 이동”하면서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포착하게 되죠.
이 때 자코메티는 극도로 얇은 형태의 조각을 만들면 큰 사이즈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1940년대 후반부터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48년 1월, 키 큰 조각들로 뉴욕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고 큰 성공을 거두기에 이른 것입니다.
자코메티의 ‘거대한 여인’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다시 한 번 짚어볼까요. 먼저 아프리카 조각과의 만남이 있었고, 그 다음은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기반으로 한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그 뒤에는 고대 이집트 예술, 또 그 다음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를 자코메티는 흡수했죠. 짧은 글에 담을 수 없는 또 다른 수많은 만남이 그의 작업 세계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가 영감을 얻고, 작업실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치열하게 만들어낸 과정을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늘 미술관에서 접하는 것은 작가의 결과물입니다. 그 결과물과 함께 가장 쉽게 관심을 끄는 것이 작품의 가격이지요. 이 두 가지만 놓고 보면 쉽게 ‘이게 이렇게 비싸다고?’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 과정에 대한 이해는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코메티의 작품 세계를 조금만 깊이 보면 그의 작품에 매겨지는 값은 단순한 가느다란 형태에 대한 대가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가 시대의 최전선에 뛰어들어 살면서 몸으로 흡수한 사상과 철학, 시대의 감각에 매겨지는 값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가치가 터무니 없는 가격이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또 순간의 영감이 결실을 맺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자코메티가 길에서 헤어지는 친구를 보며 만들어 낸 작은 조각들이 빛나는 대표작으로 탄생하기까지는 9년의 암흑기가 있었습니다. 자신만의 감각을 믿고 따랐던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습니다.
오늘은 자코메티의 작품을 보면서, 나에게 어느 날 찾아올 지 모르는 영감을 붙잡고 갈고 닦기 위한 의지를 다져보는 건 어떨까요?
전시 정보인간, 7개의 질문
2022. 2. 24 ~ 2022. 5. 29
전남도립미술관(전남 광양시 광양읍 순광로 660)
작품수 100여 점※‘영감 한 스푼’은 국내 미술관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하시면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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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