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희 교수가 달리며 환호하고 있다. 그는 더 즐겁게 달리기 위해 웨이트트레이닝과 필라테스도 병행하고 있다. 예진희 교수 제공.
“여보 이젠 건강이 중요해요. 우리 함께 운동 합시다.”
“그래요. 저도 늘 고민하고 있었어요.”
“2005년이었을 겁니다. 무더운 여름날 통역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집중하지 못하기에 ‘너희들은 꿈이 뭐니’라며 잠깐 샛길로 샌 적이 있어요. 그 때 제가 아이들에게 무심결에 ‘마라톤 풀코스 완주가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야’라고 했어요. 막연하게, 결심한 것도 아니었는데….”
예진희 교수가 경기 용인예술과학대 교정을 달리고 있다. 예 교수는 8년 전 남편의 권유로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해 요즘도 주당 3~4일, 30~40km를 달리고 있다. 용인=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그 때부터 선배님들 지도를 받으며 체계적으로 함께 달리기 시작했어요. 모임은 주로 서울 반포한강시민공원에서 했지만 개인적으로도 집(경기 성남 분당)근처 탄천도 달리고 불곡산도 올랐어요.”
천주교 신자인 그는 분당성마태오성당마라톤동호회(마마동)에도 가입해 토요일엔 마마동에서, 일요일엔 너마클에서 달렸다. 더 잘 달리려고 주중에도 2일 10km씩 달렸다. 주당 30~40km를 달렸다. 2014년 가을 중앙마라톤에서 풀코스를 처음 완주했다. 4시간37분. 그는 “해냈다는 성취감에 날듯 기뻤다.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고 했다.
예진희 교수가 달리기에 빠진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용인=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예 교수는 동아 춘천 등 메이저대회를 달리다 2017년 말 중앙마라톤을 끝으로 풀코스를 접었다. 풀코스 총 5회 완주. 기록을 단축하겠다는 욕심에 훈련도 열심히 했고 마지막 레이스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4시간 32분이란 개인 최고기록도 세웠다. 하지만 예 교수는 “내 한계를 알았다. 기록 욕심에 빨리 달렸는데 그 다음날 왼쪽 발목 심줄과 인대가 늘어났다. 그 때 사람마다 역량은 다르다는 생각을 했고 운동에 대한 궤도를 수정했다”고 했다. 그동안의 목표가 풀코스 기록 단축이었다면 즐겁게 오래 달리기로 바꾼 것이다. 이후 대회는 10km와 하프코스 등 단축마라톤에만 나갔다. 물론 평소대로 주당 3~4회, 30~40km는 꾸준히 달리고 있다.
예진희 교수가 완주한 풀코스 완주 메달. 풀코스를 총 5회 완주한 뒤엔 10km와 하프코스 등 단축마라톤에 참가하며 기록보다는 즐겁게 달리는데 집중하고 있다. 예진희 교수 제공.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한때 기록, 완주 횟수 등에 집착했는데 즐기며 꾸준히 달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친 뒤 오래 달리기 위해선 보조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래서 웨이트트레이닝과 요가, 필라테스 등을 시작했습니다. 운동을 하다보면 몸이 틀어진다거나 이상이 생겼다는 느낌이 있어요. 필라테스는 그것을 잘 잡아줘요. 근육운동을 하면 근육 세포가 쫀득쫀득하게 세워지는 듯한 힘이 느껴져요.”
예진희 교수가 요가 동작을 하고 있다. 그는 달리면서 틀어지는 몸을 잡기 위해 웨이트트레이닝과 요가, 필라테스 등을 병행하며 운동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 용인=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예 교수는 2018년 승마에도 입문했었다. 주위 권위로 시작했는데 속도감에 자칫 떨어지면 다칠 수 있어 1년 반 정도 하고 그만 뒀다. 그는 “다치면 다른 운동을 못할 수 있어 그만 뒀다”고 했다. 예 교수는 “어느 순간 운동은 하루 세끼 먹고 잠을 자야 하듯 안 하면 안 되는 삶의 일부가 됐다”고 했다.
요즘엔 부정기적이지만 사실상 전국을 돌아다니며 달린다. 너마클, 마마동 회원들의 권유에 따라 경기 파주 감악산, 수원 광교, 성남 분당 율동공원, 과천 관문운동장 등에서 만나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장거리 원정을 가기도 한다. 그는 “그 지역에 사는 회원들이 추천해주면 가서 달리는 식이다”고 했다.
예진희 교수가 경기 용인예술과학대 교정을 달리고 있다. 8년 전 남편의 권유로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 예 교수는 요즘도 주당 3~4일, 30~40km를 달리면서 나이를 거스르며 즐겁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 용인=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제가 얼마 전 지인들과 함께 당일치기로 한라산을 다녀왔어요. 눈 덮인 한라산이 너무 아름다워 자랑을 했더니 남편이 부러워하더라고요. 그래서 5월에 함께 한라산에 가기로 했어요. 이제 자주 함께 운동할 겁니다.”
예 교수는 ‘달리기 전도사’ 역할도 하고 있다.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직접 말하고,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달리기가 주는 유익함을 홍보하고 있다. 마마동에선 신자가 아니더라도 회원으로 받아주는데 함께 달리다 보면 신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가족 및 제자들에게도 달리기를 권한다.
“솔직히 우리 아이들은 운동엔 관심이 없어요. 하지만 딸은 운동하는 엄마 아빠를 보며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는 하다고 하더라고요. 제자들에게도 얘기는 하는데…. 아직 어려서인지 별로 관심이 없어요. 수업 시간에 ‘마라톤 풀코스가 어떤 의미인지 아느냐? 너희들이 서울 양재동에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 오는 거리를 달리는 것이다’고 하면 놀라기는 하지만 정작 달릴 생각은 하지 않더라고요.”
예진희 교수가 질주하고 있다. 그는 모교 동호회인 ‘너마클(서울 여의도고 마라톤클럽)’에 가입해 체계적으로 달렸다. 예진희 교수 제공.
달리면서 함께 하는 사람들의 중요성도 다시 알았다. 예 교수는 “함께 응원하며 달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해본 사람은 안다. 인생은 혼자 살 수 없다. 서로에게 힘이 되고 기쁨이 돼주면 얼마나 좋은가”라고 했다. 달리면서 평생 함께 할 ‘건강한 취미’를 얻었다고 하는 예 교수는 “한 살 더 먹으면 몸이 달라진다는데 난 아직도 몇 년 전과 똑같은 거리를 매주 달리고 있다. 그럼 실제론 더 젊어진 것 아니냐”며 활짝 웃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