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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전체 8화 중 3화까지 먼저 공개된 애플TV플러스 드라마 ‘파친코’는 첫 화 도입부에 나오는 자막의 영어 문구처럼 견딤에 관한 대서사극이다. 견딤의 주체는 ‘선자’로 대표되는 여성. 내 새끼들을 먹이고 살리겠다는 어미의 본능은 일제강점기부터 1989년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의 격동을 온몸으로 견뎌낸 강인함의 원천이었다.
드라마의 시작은 1915년 일제강점기의 부산 영도. 아이 여럿을 돌도 되지 않아 잃은 양진(정인지)은 이번만큼은 아이가 살수 있게 해달라며 무당에게 굿을 부탁한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선자다. 언청이에 다리를 절어 무시받기 일쑤지만 누구보다 사려 깊은 성품을 가진 아버지 밑에서 선자는 사랑받으며 자란다. 영도 앞바다에서 물질을 하고 갈대밭에서 잠자리를 잡는 어린 선자(전유나)의 말간 얼굴은 절망의 시대에 내비친 희망이다.
드라마는 어린 선자, 1930년대를 사는 10~20대의 젊은 선자(김민하), 1989년 오사카에서 인생 말년을 보내는 노년의 선자(윤여정)에 이르기까지 80년에 가까운 세월을 담아낸다. 선자 부모부터 선자, 그의 아들, 손자에 이르기까지 한미일을 오간 4대에 걸친 격동의 가족사가 담겼다.
이를 담아내기 위해 1910년대부터 현재인 1989년까지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넘나든다. 선자의 손자가 일하는 뉴욕부터 선자와 그의 아들이 거주하는 오사카에 이어 도쿄 부산까지 공간 역시 3개국을 오간다. 배우 윤여정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시점과 공간 변환이 잦아 시청자들이 혼란스러워할 것을 우려했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이는 이야기 전개에 역동성을 더해 시청자들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데 큰 역할을 한다.
할리우드 제작진이 고증한 뒤 되살려낸 일제강점기 조선의 풍경은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 미국 드라마가 담아낸 부산의 선창과 바다, 해변 마을 등 자연 풍광은 “한국이 이토록 아름다웠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이국적이고 신비롭다. 억압받는 일제강점기에도 사고파는 이들의 활기로 가득한 어시장을 되살려낸 제작진의 세공 솜씨는 박수를 보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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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때나 노년이 돼서나 제 핏줄에게 열심히 밥을 지어먹이고 그러느라 온전히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하는 선자의 모습은 시대를 떠나 모두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가슴 한 편이 먹먹해지는 이유다. 이 드라마는 선자라는 한 여성을 통해 한국의 민족사를 담아낸 미시사 드라마의 걸작이라 할만하다.
일제강점기를 담아낸 탓에 애플TV 트위터 등엔 일본 네티즌들의 항의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이들은 “한일합병은 한국 경제 성장에 큰 도움을 줬다”라는 등 파친코의 내용이 허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외신은 극찬을 쏟아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이 조용한 한국작품은 우리 TV드라마를 부끄럽게 만든다”라고 평가했다. 영국 BBC 역시 “눈부신 한국의 서사시”라고 극찬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