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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난 마장동 먹자골목, 안전펜스 설치놓고 상인-구청 한밤 충돌

입력 | 2022-03-28 03:00:00

상인들 “안전 구실삼아 점포 철거 감행 의도”
성동구 “상인들과 합의해 대체 부지 찾을 것”
펜스 덧대기로 4시간 대치 일단락



27일 오후 서울 성동구 마장동 먹자골목에 성동구청장 명의의 경고문이 붙어 있다. 경고문에는 ‘이곳을 무단점유·사용할 시 고발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손대지 마세요. 뭐 하시는 거예요, 지금?” “(펜스를) 설치하지 말라니깐요!”

25일 오후 10시경 서울 성동구 마장동 먹자골목에선 고성이 터져 나왔다. 골목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굴착기 앞을 상인 20여 명이 막아서며 고함을 질렀고, 이어 성동구에서 고용한 용역직원 90여 명이 이들을 떼어 놓으려 하면서 몸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 상인-구청 한밤 충돌, 4시간 만에 일단락

성동구와 상인들의 갈등이 본격화된 것은 19일 먹자골목 안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부터다. 당시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점포 8개가 전소됐다. 성동구는 먹자골목 전체가 무허가인 만큼 화재를 계기로 철거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상인들은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반발하고 있다.

24일 상인들은 “성동구의 기습 점포 철거를 막겠다”며 자비로 먹자골목 주변에 펜스를 설치했다. 그런데 25일 성동구 측 용역직원들이 “안전상 문제가 있으니 구 차원에서 펜스를 설치하겠다”며 굴착기를 앞세워 들어오다가 충돌이 빚어진 것. 상인들은 ‘안전상 문제’는 구실일 뿐 구 측에서 상인들의 펜스를 철거하고 기회를 봐 점포 철거까지 감행하려는 의도라며 필사적으로 맞섰다.

성동구 측은 26일 오전 2시경 상인들의 펜스 위에 펜스를 덧대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또 ‘출입금지’를 알리는 경고문을 붙이고 떠나면서 4시간의 긴박한 대치 상황이 끝났다. 이 과정에서 팔과 손가락 등에 가벼운 부상을 입은 상인 2명이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 국공유지 점거한 무허가… 당분간 갈등 지속될 듯

대치 상황은 일단락됐지만 성동구와 상인들의 갈등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마장동 먹자골목은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정부가 마장동 소 도축장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곳에 있던 무허가 점포를 현재의 국공유지로 몰아내면서 조성됐다.

성동구 측은 “무허가인 만큼 상인들과 합의해 대체 부지를 찾을 예정”이라며 “(이전 후) 공공시설과 공원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근에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서 ‘시민들에게 땅을 돌려 달라’는 주민 민원이 이어지는 것도 성동구 측에는 부담이다.

반면 상인들은 ‘삶의 터전을 잃을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이다. 상인 A 씨는 “40년 가까이 이곳에서 생계를 이어온 만큼 철거 대신 영업을 이어갈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채연 기자 ycy@donga.com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