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TV플러스 드라마 ‘파친코’ 日정착 한국 이민자 가족 4대의 삶, 70여년 뉴욕-오사카-부산 넘나들며 격동의 세월 견딘 ‘강한 어미’ 그려… 윤여정 등 절제된 모성애 연기 압권 日 일부 비난… 외신은 극찬 릴레이, CNN “尹 추가 수상 논의해야”
드라마 ‘파친코’에서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10대인 선자(김민하)가 자신의 엄마가 운영하는 부산 영도의 하숙집 방에 심각한 표정을 한 채 앉아 있다. 선자는 오사카에서 온 한수(이민호)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충격을 받는다. 김민하는 10대, 20대의 선자 역을 맡아 절제력 돋보이는 연기를 보여준다. 아래 사진은 10대 때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갖은 고생을 하고 노년에 이른 선자. 배우 윤여정이 연기했다. 애플TV플러스 제공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견뎠다.”
25일 전체 8화 중 3화까지 공개된 애플TV플러스 드라마 ‘파친코’는 1화 도입부에 나오는 영어 문구처럼 견딤에 관한 대서사극이다. 견딤의 주체는 ‘선자’로 대표되는 여성과 그의 가족. 특히 내 새끼를 먹이고 살리겠다는 어미의 강인함은 그와 가족이 근현대사의 격동을 견뎌낸 힘의 원천이었다.
드라마는 일제강점기 부산 영도에서 시작된다. 바다에서 물질을 하는 가난한 하숙집 딸 어린 선자(전유나)의 얼굴은 절망의 시대에 떠오른 희망처럼 말갛다. 선자는 자신을 아끼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좌절하지만 곧 일어선다. 선자는 열다섯 열여섯 남짓한 어린나이에 오사카에서 온 수산물 중개상 한수(이민호)를 만난다. 그와 사랑에 빠져 임신하지만 그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아직 소녀에 불과한 그는 아이를 배 속에 품은 채 단단한 얼굴을 드러낸다. “허리가 뽀사지는 한이 있어도 내 아는 부족한 거 하나 없이 키울 깁니다.”
할리우드 제작진이 되살려낸 바다 갈대밭 등 일제강점기 조선의 풍경은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자연 다큐멘터리처럼 신비롭다. 활기 가득 찬 영도 어시장을 세공해 낸 제작진 솜씨는 박수를 보낼 만하다. 배우들 연기 역시 빼어나다. 선자 엄마 역의 정인지부터 김민하 윤여정까지…. 엄마 역을 맡은 세 배우는 절제에 절제를 거듭한 모성애를 보여준다.
일제의 만행은 노골적으로 보여주진 않는다. 선자가 오사카로 건너간 뒤 겪는 차별 등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고초와 이방인의 한을 그리는 데 주력한다. 억압의 시대를 이겨내는 한국인의 모습은 담담할 뿐 비장하게 그리지 않는다. 그래서 더 와 닿는다.
10대 때나 노년이 돼서나 제 핏줄에게 열심히 밥을 지어 먹이고 그러느라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하는 선자는 모두의 어머니다. 역사 그 자체다. 한 어머니를 통해 한국의 민족사를 절제미를 살려 담아낸 미시사(微視史) 드라마의 걸작이라 할 만하다.
드라마가 공개되자 일본의 일부 누리꾼은 “한일합병은 한국 경제 성장에 큰 도움을 줬다”고 주장하는 등 파친코의 내용이 허구라며 비난을 쏟아냈다. 반면 외신은 극찬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이 조용한 작품은 우리 TV드라마를 부끄럽게 한다”라고 평했다. 미국 CNN은 지난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의 연기에 대해 “추가로 수상 논의를 해야 한다”며 찬사를 보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