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라 요기요 마케터
내 첫 직장 상사는 까다롭고 화를 잘 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스물다섯 살 때는 그렇게 보였다. 첫 상사는 작은 실수에도 엄격했고 나는 작은 실수가 잦았다. 나는 그의 얼굴은 물론 사내 메신저에 뜬 이름만 봐도 심장이 내려앉을 지경이 되었다. 결국 그를 포함한 여러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상사가 이유를 물었다. “닮고 싶은 선배가 없어서”라고 답했다. 반쯤 반항하는 마음도 있었다. 역시 화를 낼 줄 알았는데 그는 의외로 말없이 한숨만 쉬었다.
이제 내가 그때 첫 직장 상사 나이에 가까워졌다. 계속 직장인이었으니 많은 상사와 선배들을 만났고, 선배의 입장이 되기도 한다. 선배가 되어 보니 좋은 직장 선배 되기도 쉽지 않았다. 2020년 모 구직사이트에서 밀레니얼세대를 대상으로 이상적인 상사 설문조사를 했다. 1위는 ‘사람이 좋은 상사’다. 하지만 ‘사람이 좋은’이란 말은 모호하고 주관적이다. 시대와 개인 기준에 따라 좋은 사람의 기준은 얼마든 변할 수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직장 선배의 조건을 물었다. ‘내 의견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부터 ‘퇴근하고 연락 안 하는 사람’ 사이에는 드러나지 않은 공통점이 있었다. 자기 자신이 업무에서 원하는 바에 따라 좋은 선배의 조건도 달라진다는 점이었다. 일을 더 잘하고 싶은 A는 나를 성장시켜 주는 선배가 좋다고 했다. 업무 효율을 중요하게 여기는 B는 의사결정이 빠른 선배를 좋아했다. 결국 후배가 원하는 것을 잘 알아야 좋은 선배가 된다는 뜻이었다.
“올해 우리가 이 셋만 잘하면 성공이야.” 1년 정도 함께 일한 Y 팀장이 자주 했던 말이다. 그는 목표를 잘 만들어 준다는 면에서 좋은 선배였다. 나를 포함한 그의 팀원들은 성향과 개인 목표가 모두 달랐다. 누군가는 집에 빨리 가고 싶었고, 누군가는 다른 업무를 해보고 싶었다. Y 팀장이 보여준 최소한의 목표는 모두가 닿아야 하는 결승점이 됐다. 팀원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노력하며 나름의 소속감과 만족을 얻었다. 원하는 것을 알아내기는 어렵고 회사는 사조직이 아니니 업무 목표를 만들어주는 것도 방법이구나 싶었다.
최근 첫 직장 선배를 종종 떠올린다. 그때 나는 선배가 일을 너무 많이 줘서 원망스러웠다. 불과 몇 년 후엔 실력을 쌓고 싶어 욕심을 내어 일을 많이 받았다. 다른 때 만났다면 그를 좋은 선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일이 익숙하지 않은 스물다섯 살 신입사원을 잡고 혼내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배울 점이 있는 누군가에게 혼나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조금은 안다. 무엇보다 그때 하도 혼이 나서인지 직장에서 난처한 일이 생겨도 어지간해서는 겁먹지 않는다.
김소라 요기요 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