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스트리트]〈14〉 도봉구 한글역사문화길
26일 오후 서울 도봉구 간송옛집(전형필 가옥)을 찾은 시민들이 가옥 외부를 둘러보고 있다. 도봉구 ‘한글역사문화길’에는 간송 전형필의 흔적이 묻은 간송옛집을 비롯해 ‘연산군묘’ ‘김수영 문학관’ 등 풍부한 역사적 유물이 자리 잡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시인 김수영의 대표작 ‘풀’에는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의 강인한 저항정신이 담겨 있다. 그는 초기에 서정시를 많이 썼지만 6·25전쟁과 4·19혁명 등 굴곡진 현대사를 거치면서 저항시인으로 거듭난 것으로 평가된다. 23일 그를 기리는 서울 도봉구 방학동 ‘김수영 문학관’을 찾았다. 아파트 단지 안에 외딴섬처럼 자리한 이곳은 도봉구 ‘한글역사문화길’의 시작점이다.
○ 길을 걷다 시인을 만나다 ‘김수영 문학관’
지하 1층, 지상 4층의 문학관은 시인이 보낸 삶 전반의 궤적을 충실히 담고 있다. 시와 평론 중심의 1층 전시실에서는 그가 직접 쓴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등의 원고와 일대기를 감상할 수 있다. 낱말 자석으로 시도 지을 수 있고, 직접 낭독한 김수영의 시를 녹음하는 것도 가능하다.2층에는 그가 즐겨 앉던 테이블 등의 일상 소품이 놓여 있다. 3층은 도서관, 4층은 강당인데 학술행사가 많이 열린다. 도봉구 관계자는 “아이들과 나들이 겸 역사교육을 하려는 학부모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550년 된 ‘방학동 은행나무’에 얽힌 재미난 얘깃거리도 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인데 높이가 25m, 둘레가 10.7m나 된다. 고개를 뒤로 젖혀야 겨우 전체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조선 후기 경복궁을 증축할 때 베어질 뻔했지만 마을 주민들이 흥선대원군에게 간곡히 요청해 겨우 살아남았다고 한다. 2013년 서울시 기념물(제33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 ‘연산군묘’ ‘간송옛집’…살아있는 역사공간
맞은편에는 세종대왕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와 사위 안맹담의 묘가 있다. 위는 용, 아래는 거북 형태로 이뤄진 커다란 비석이 눈길을 끈다. 조선 전기 사대부가 무덤 양식을 연구할 때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동진 구청장은 “한글역사문화길에는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역사적 공간들이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묘역을 지나 10분 정도 걸으면 아담한 고택인 ‘간송옛집’을 마주하게 된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양아버지 전명기(1870∼1919)가 별장으로 지은 집인데, 지금은 간송의 제사를 모시는 ‘재실’ 등으로 쓰인다.
간송은 일제강점기 훈민정음 해례본 등 외국으로 유출될 뻔한 문화재를 지켜내기 위해 일생을 바친 인물이다. 이 집은 간송이 거주했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건물이다. 성북동 북단장 한옥은 소실됐고, 종로4가 본가 건물은 재개발로 사라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에는 다도회나 음악회가 열리기도 했다. 집 뒤편 언덕에 간송 부부의 묘가 있다. 이미실 간송옛집 실장은 “근대 한옥이기도 하고 우리 문화유산을 보호했던 간송의 얼이 서려 있어 건축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보존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