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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장 현수교와 차나칼레[임용한의 전쟁사]〈205〉

입력 | 2022-03-29 03:00:00


3월 18일 세계 최장의 현수교가 한국 기업에 의해 준공됐다. 다리가 놓인 다르다넬스 해협은 갈리폴리(겔리볼루) 반도와 소아시아 사이에 놓인 지협이다. 고대로부터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였다. 차나칼레는 이 해협을 건너는 중요한 나루로, 페리가 이곳에서 운항됐다. 한 15분이면 건너가는 멀지 않은 해협인데, 다리를 놓기가 쉽지 않았다. 폭은 좁지만 수심이 대단히 깊다. 덕분에 짙푸른 물빛은 지극히 아름답고, 거대한 화물선과 흘수 깊은 군함들이 쉽게 항해할 수 있다.

이 해협은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다. 다르다넬스를 봉쇄하면 흑해는 꼼짝없이 호수가 되어 버린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다리가 충분히 높아야 하므로 현수교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중요한 교통의 요지이다 보니, 수많은 전쟁의 기억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페르시아 황제 다리우스 2세는 이 해협에 배다리를 세우고 건너 우크라이나 지역으로 들어갔다가 유목민족에게 패해 영영 돌아오지 못할 뻔했다. 아들 크세르크세스도 100만 대군을 이끌고 이 해협을 건너 그리스를 침공했다. 해협에 파도가 치자 바다를 벌한다며 수면을 채찍으로 때리던 그는 막상 건널 때는 통행료로 황금그릇을 바다에 넣었다. 20세의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 정복을 시작한 것도 이 해협을 건너면서부터였다.

차나칼레 서쪽에는 트로이가 있다. 동쪽으로 올라간 지역에서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전쟁의 승패를 바꾼 두 번의 중요한 해전이 이 해협에서 벌어졌다. 처칠 평생의 굴욕이 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갈리폴리 전투 장소도 이곳이다. 영국 해군과 오스만 제국 해군은 잠수함까지 동원한 격전을 벌였다. 기원전부터 현재까지 이처럼 거대한 전쟁의 기억을 간직한 곳이 또 있을까? 터키 답사 때 차나칼레는 인상 깊은 곳이었다. 전쟁의 기억은 흔적도 없고, 해변은 밝고 아름답고 활기차기만 했다. 수천 년의 염원이던 다리를 이제 한국 기업이 가설했다. 이 다리가 군사용이 아닌 번영과 평화를 위한 가교가 되길 바란다. 그런데 이 해협의 끝 흑해에는 지금 포연이 가득하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