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난민과 함께’ 리본 달고 시상자로… “뿌린대로 거둔다” 발음 용서구해 농아인 배우 코처, 역대 두번째 수상… 尹, 수어축하 후 트로피 들어줘 배려 애플TV+ ‘코다’ 작품상… OTT 처음, 감독상 캠피언… 2년 연속 여성 수상
27일(현지 시간)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코다’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농아인 배우 트로이 코처(왼쪽)와 남우조연상 시상자로 무대에 올랐던 윤여정. 코처가 ‘사랑합니다’라는 뜻의 수어를 하고 있다. 이날 윤여정은 코처를 수상자로 육성 호명하기에 앞서 이 수어를 하며 그의 수상 사실을 알렸다. 로스앤젤레스=AP 뉴시스
27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현장. 남우조연상 시상자로 나선 배우 윤여정(75)이 겸연쩍게 웃으며 영어로 말했다.
그는 “지난해 내 이름을 틀리게 발음하는 이들에 대해 불평했는데 정말 죄송하다”며 “이번엔 내가 후보들 이름을 발음해야 하는데 용서해 달라”고 했다. 지난해 4월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을 당시 그는 “내 이름을 ‘유정’ 등으로 (틀리게) 부른다”고 했다. 그런 그가 1년 만에 남우조연상 후보들의 각양각색 영어 이름을 호명해야 하는 입장이 되자 이를 재치 있게 표현한 것. 검정 롱드레스를 입고 백발을 그대로 드러낸 노배우의 솔직한 고백에 객석에선 웃음이 터졌고 이내 박수가 쏟아졌다. 이날 윤여정은 왼쪽 어깨에 ‘#With Refugees’(난민과 함께)라는 문구가 인쇄된 파란 리본을 달았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진행하는 우크라이나와 난민 지지 캠페인에 참여한 것.
최고상인 작품상도 ‘코다’에 돌아갔다. 대사의 40% 안팎이 수어로 된 ‘코다’는 농아인 부모, 오빠와 살며 이들의 입과 귀가 돼주는 딸 루비가 음악을 하려는 꿈을 품고 집을 떠나려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 4명 중 루비 아빠 역의 코처를 포함한 3명의 배우가 농아인이다.
OTT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건 처음이다. 높아진 OTT의 위상과 영화계의 판도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 벌어진 것. 지난해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에 이어 올해 샨 헤이더 감독의 ‘코다’가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작품상이 2년 연속 여성 감독 작품에 돌아갔다. 감독상 역시 OTT 넷플릭스 영화 ‘파워 오브 도그’를 연출한 제인 캠피언 감독이 받으며 지난해 자오에 이어 2년 연속 여성 감독이 수상했다. 여성 감독이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받은 건 이번이 세 번째다.
국제장편영화상은 작품상 후보에도 올랐던 일본 거장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에 돌아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실린 동명 단편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에는 박유림 진대연 안휘태 등 한국 배우도 출연했다. 백인 남성 중심으로 운영돼 ‘화이트 오스카’라 비판받았던 아카데미 측이 성별, 인종, 장애 등 다양성의 문을 한층 넓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