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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전문 경영인 체제 겪었던 가족 기업, 위기 극복에 유리”

입력 | 2022-03-30 03:00:00

伊 보코니大 등 관련 기업 489곳 분석




가족 기업은 창업주 일가가 대주주인 기업을 의미한다. 가족 기업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경영권 승계다. 보통 창업주는 가족 중에서 최고경영자를 선임해 자신이 평생 일궈낸 전통과 가치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길 원한다. 이 경우 가족 전통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리더십, 장기적 성장을 위한 과감한 투자, 오너 일가의 막강한 사회적 자본 활용 등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단점도 있다. 친족주의가 능력 있는 직원의 사기 저하와 이탈을 유발하고 가족 간 갈등이 조직 내 파벌주의를 야기하기도 한다. 또한 제한된 인력 풀에서 최고경영자를 선발해야 하기 때문에 경영자로서 역량이나 자질이 부족한 경우도 더러 있다. 이런 이유로 기존 연구들은 대체로 가족의 경영권 승계보다 전문 경영인 영입이 기업 성과 측면에서 더 낫다고 결론짓는다.

그렇다면 이미 전문 경영인 체제로 전환한 가족 기업의 경우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이탈리아 보코니대 교수 등으로 구성된 연구진은 전문 경영인이 대표이사로 있는 이탈리아 가족 기업 중 2000∼2016년 대표이사가 다시 가족 혹은 새로운 전문 경영인으로 바뀐 기업 489곳을 대상으로 실증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 결과, 전문 경영에서 가족 경영으로 회귀한 기업은 전문 경영을 유지한 기업보다 평균적으로 더 나은 재무적 성과를 보여줬다. 사내에 성과주의가 자리 잡는 등 전문 경영 체제로 한번 문화가 바뀌면 가족 경영으로 회귀하더라도 친족주의나 파벌주의보다는 폭넓은 사회적 네트워크, 장기적인 관점의 과감한 투자 등 가족 경영이 갖는 장점이 발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전문 경영으로 전환한 기업이 가족 경영으로 회귀해 위기를 극복한 사례를 종종 접할 수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는 1995년부터 전문 경영인이 경영했으나 2009년 발생한 대대적인 안전 관련 리콜 사건을 계기로 도요다 가문의 후손 도요다 아키오가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아키오 사장은 품질 문제로 곤욕을 치르던 도요타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국내에서는 2010년 LG전자의 실적 부진으로 전문 경영인이던 남용 부회장이 사퇴하고 LG 오너 일가의 구본준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한 사례가 있다. 구 부회장의 경우 위기에 처한 스마트폰 사업을 재건하지는 못했지만 LG전자의 미래 성장 엔진인 자동차 부품 사업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가족 경영이 모든 상황에서 유효한 것은 아니다. 산업 변동성이 크고 연구개발 등 기업의 혁신 활동이 경쟁에서 중요한 경우 전문 경영인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족 전통을 유지하는 등 내부 결속을 꾀하기보다는 외부 환경 변화를 빠르고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는 지식과 자질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 전문 경영과 가족 경영의 효과를 전략적으로 판단해 경영 체제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



강신형 충남대 경영학부 조교수 sh.kang@cnu.ac.kr
정리=최호진 기자 ho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