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오른쪽)이 7일(현지 시간) 수도 빌뉴스를 찾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둘은 양국의 안보 동맹을 강화해 러시아를 압박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빌뉴스=AP 뉴시스
하정민 국제부 차장
1989년 8월 23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라트비아 수도 리가,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을 잇는 675km의 길에 세 나라 국민 200만 명이 손을 맞잡고 인간 띠를 만들었다. ‘발트의 길(Baltic Way)’로 불린 이 사건은 옛 소련의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약소국의 독립 열망과 비폭력 저항 의지를 만방에 보여줬다. 당시 200만 명 중 절반은 발트 3국 중 인구가 가장 많은 리투아니아 국민이었다.
7개월 후 리투아니아는 소련에 속했던 나라 중 가장 먼저 독립을 선언했다. 이후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가 뒤따랐고 소련도 무너졌다. 세 나라는 2004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유럽연합(EU)에 모두 가입하며 완전히 서유럽으로 편입됐다.
30년이 흐른 2019년 8월 23일 홍콩의 반중 시위대는 ‘발트의 길’을 모방한 50km의 인간 띠를 만들어 중국의 탄압을 규탄했다. 동병상련을 느낀 리투아니아인 역시 곳곳에서 홍콩 지지 집회를 열었다. 중국이 빌뉴스 주재 중국대사관 직원 등을 동원해 폭력까지 써가며 이 집회를 방해하자 국민들의 반중 정서가 불타기 시작했다.
리투아니아의 이런 행보 뒤에는 대국의 횡포와 공산당의 강압 통치에 대한 극도의 반감,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고난의 역사가 있다. 중세시절 잠시 번성했지만 18세기 말부터 러시아의 지배를 받으며 혹독한 민족말살 정책을 겪었다. 고유 언어와 역사 교육이 금지됐고 수많은 국민이 숙청당했다. 세계 모든 나라를 조공국 취급하며 힘으로 찍어 누르는 중국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존의 최대 위협이던 러시아를 비판하는 데도 열심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당일인 지난달 24일 리투아니아 또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하고 각종 제재에도 발 벗고 나섰다. 미국에는 발트3국 주재 미군을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미국 또한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재블린’ 미사일을 리투아니아에도 판매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인구 280만 명(세계 137위), 국가총생산 560억 달러(세계 80위)에 탱크와 전투기조차 없다. 외형적 조건만 보면 도저히 15억 인구를 가진 세계 2위 경제대국과 맞설 수 없는 나라다. 그런데도 연일 중국에 날을 세우자 중국 또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리투아니아의 반러 행보가 소련 붕괴의 시발점임을 잘 알고 있는 중국이 이번에는 이 나라가 전 세계에 반중 정서를 확산시킬까 우려하고 있다며 “작은 나라도 ‘슈퍼 파워’의 두통거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평했다. 중국에 최악의 상황은 다른 나라가 리투아니아를 본받는 것인데 이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슬로베니아 또한 대만대표처 설립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인간이 돈으로만 움직이지 않듯 국가 대 국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국격과 국가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반드시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이 필요한 것도 아님을 리투아니아의 결기가 보여준다. 세계 6위 군사력에 11위 경제력까지 보유했음에도 중국을 ‘큰 봉우리’라 칭하고 “우크라이나가 코미디언 대통령을 잘못 뽑아 러시아의 침략을 당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부끄럽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