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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우크라를 한국처럼 분단국가 만들려고 해… 끝까지 싸울 것”

입력 | 2022-03-30 03:00:00

우크라 서남부 현지 르포



“이 안에 내 친구도…” 전사자 추모하는 우크라 시민 29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서남부 체르니우치 시청 광장에서 한 시민이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다 숨진 이 지역 출신 우크라이나 병사 100여 명의 사진을 보며 추모하고 있다. 이 시민은 “이 사진 안에 내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국기를 배경으로 한 전사자들의 사진마다 액자 귀퉁이에 추모와 애도를 상징하는 하얀 천사 모형이 붙어 있다. 체르니우치=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우크라이나가 둘로 쪼개지게 생겼어요. 푸틴이 우리를 한국처럼 분단국가로 만들려 합니다. 한국인인 당신 생각은 어떤가요?”

28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서남부 도시 체르니우치의 시청 앞 광장에는 시민들이 모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동부를 점령하기 위해 전력을 집중시키는 현 상황에 대해 두려움과 분노를 토로했다. 러시아의 집요한 공격을 한 달 넘게 버텨내던 남동부 마리우폴이 이날 러시아군에 사실상 넘어갔다는 소식까지 전해지자 남북이 분단된 한반도처럼 ‘동서 분단’의 아픔을 겪게 될까 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루스라나 씨는 “분단은 절대 있을 수 없다.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세르히 씨는 “우크라이나 남부는 우리 땅이다. 푸틴은 러시아로 돌아가라”고 했다.

시민들은 시청 광장에 우뚝 선 한 동상을 에워싸고 있었다. ‘국민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타라스 셰우첸코(1814∼1861)였다. 러시아의 모진 탄압에도 러시아어가 아닌 우크라이나어로 시를 썼던 그는 우리로 치면 윤동주 시인 같은 존재다. 시민들은 그의 시에서 따온 구절인 ‘우크라이나에 영광을!’ 구호를 수없이 외쳤다. 한 시민은 기자에게 다가와 셰우첸코의 시 ‘유언’을 읊어줬다.

‘그대들이여, 떨치고 일어나 그대들의 자유를 굳게 지키라. 나 죽거든 그리운 우크라이나 넓은 들판에 묻어다오.’


“남동부 마리우폴 함락 임박… 우크라 동서분단 위기 현실화”



크림~돈바스 잇는 ‘친러 벨트’ 완성… 러, 準국가 주장 후 분단 시도 전망
이스탄불서 러-우크라 5차 협상
우크라 “러와 정상회담 할만큼 진전”… 러 “키이우 등서 군사행동 줄일것”



체르니우치=김윤종 특파원

“우크라이나가 동서로 나뉜 분단국이 될 수 있다”는 시민들의 우려는 우크라이나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체르니우치로 대피한 시민들을 돕는 자원봉사자 소피아 씨는 기자에게 “마리우폴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음에도 그래도 버텨 왔는데… 남동부의 핵심 지역인 그곳을 러시아군이 거의 점령했다고 하니 분단 위기가 현실화될 수 있을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 “남북 분단 한국처럼 ‘동서 분단’ 우려”

28일(현지 시간)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은 CNN에 “러시아군의 계속되는 포격으로 너무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불행히도 마리우폴 지역 대부분이 러시아군 통제에 놓이게 됐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시 당국에 따르면 러시아군의 계속된 공격으로 마리우폴에서 어린이 210명을 포함해 최소 5000여 명이 사망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사망자가 최대 1만 명에 이를 수 있다고도 했다. 도시 내 주거 건물의 90% 이상이 손상됐고, 완전히 무너진 건물이 40%에 달한다. 러시아군의 포위에 시민 16만 명이 식량과 물, 난방을 차단당했다.

러시아에 마리우폴은 친러시아 세력이 대부분 장악한 동부 돈바스와 2014년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곳을 손에 넣으면 이미 점령한 남부 도시 헤르손을 비롯해 크림반도-마리우폴-돈바스를 잇는 친러시아 남부 벨트가 완성된다. 러시아는 점령지들을 하나로 이어 준(準)국가라 주장한 뒤 분단을 시도할 것으로 우크라이나는 보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한반도(식 분단) 시나리오’를 구현하려 한다”며 “수도 키이우, 제2도시 북부 하르키우의 병력까지 동남부로 이동시켜 동남부 함락 지역을 연합하려 할 것”이라고 전했다.
○ 우크라 “러와 정상회담 할 정도 협상 진전”

우크라軍, 키이우 주변 탈환… 파괴된 러 탱크 28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동쪽으로 400km 떨어진 트로스탸네츠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파괴된 러시아군 탱크 주변을 살피고 있다. 키이우 외곽 일부 지역은 우크라이나군이 탈환에 성공했지만, 집중 공격을 받아 온 남부 요충지 마리우폴은 함락 위기에 처했다. 트로스탸네츠=AP 뉴시스

우크라이나인들은 분단 위기를 실감하면서 더욱 결속하고 있다. 기자가 체르니우치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시민 10여 명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분단국가로 만드는 것만큼은 결사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키이우국제사회학연구소(KIIS)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와 맞서 싸우겠다’는 응답은 58%인 반면 ‘피란 가겠다’는 의견은 19%에 그쳤다.

우크라이나군이 28일 키이우 서북부 도시 이르핀을 러시아군으로부터 탈환하는 등 북부에서는 반격이 거세다. 올렉산드르 마르쿠신 이르핀 시장은 이날 “완전히 해방됐다. 이르핀은 반격의 거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키이우시는 러시아군이 외곽으로 물러나면서 이날부터 오후 9시∼오전 6시 통금 시간을 2시간 줄이고, 온라인으로 학교 수업을 재개했다.

우크라이나는 29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러시아와 5차 평화회담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포기하고 중립국 지위를 갖는 대신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터키 등이 우크라이나 안보를 보장하는 새 체제를 러시아에 제안했다. 중립국 지위가 채택되면 우크라이나에 외국 군사기지를 유치하지 않을 것이라며 러시아군 철수를 요구했다. 특히 이날 회담이 끝난 뒤 우크라이나 측 협상 대표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실 보좌관은 “양국 정상회담을 할 정도로 충분한 진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러시아 협상 대표단은 러시아군이 집중 공격을 벌여 왔으나 고전해온 키이우와 북동부 체르니히우 등 2곳에서 “군사행동을 대폭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체르니우치=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