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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와 북부 체르니히우에서 군사 활동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합의했다. 정치적으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간 정상회담 가능성이 모색됐다.
다만 정상회담은 우선 협상단간 합의가 이뤄지고, 이 합의문에 양국 외무장관이 서명하는 절차를 모두 거친 뒤 타진해볼 수 있다고 러시아 측은 설명했다. 메딘스키 보좌관은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국을 포함, 회담이 다국적 성격을 지니는 만큼 쉽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우크라, 러에 ‘새 안전보장’ 제안
▶‘나토 헌장 5조’에 준하는 서방의 안전보장: 우크라이나는 서방 국가들이 나토의 집단방위 수준에 준하거나 그보다 강력한 안전 보장을 법적 구속력 있는 방식으로 해주길 원하고 있다.
AFP 통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협상 대표인 다비드 아라카미아 집권당 대표는 “우리는 관련국이 나토 헌장 5조에 준하는, 혹은 그보다 강력한 방식으로 행동할 국제 안전보장 메커니즘을 원한다”고 말했다.
나토 헌장 5조는 회원국 중 한 곳이 공격 받으면 전체 회원국이 지원을 개시, 집단적으로 방어한다는 상호방위 의무를 명시한 조항이다.
아울러 우크라이나는 기존 Δ캐나다 Δ독일 Δ이스라엘 Δ이탈리아 Δ폴란드 Δ터키도 여전히 우크라이나 안전보장에 관여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나토 미가입·중립국: 우크라이나는 이 같은 안전보장이 이뤄진다면 나토 가입을 단념하고 중립국이 되라는 러시아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아라카미아 대표는 “(상기) 안전보장이 작동한다면 중립국 지위를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측 또 다른 협상 대표인 올렉산드르 찰리 의원은 “(나토 외에) 다른 어떤 군사-정치 동맹에도 가입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나토의 동진이란, 과거 소련에 속하거나 그 위성국이었던 동유럽 국가들이 나토에 가입, 해당 국가에 러시아를 겨냥한 나토의 미사일과 병력이 배치된 상황을 의미한다.
▶외국군 주둔기지 유치 단념: 우크라이나는 요구한 안전보장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영토내 외국군 주둔기지를 유치하지 않겠다고 찰리 의원은 밝혔다.
다만 그는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 관련국과의 합동 군사훈련은 영토 내에서 이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럽연합(EU) 가입: 우크라이나 정부는 군사동맹에 가입하진 않더라도 경제적 성격이 강한 정치경제블록 유럽연합(EU)에 가입하겠다는 의지를 시사했다.
아울러 안전보장 관련국들이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절차를 지원해달라고 우크라이나 측은 요구하고 있다.
결국 위 4개 항목은 ‘강력하고 법적 구속력 있는 안전보장 요구’로 귀결된다. 제대로 된 안전보장만 이뤄진다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요구하는 핵심 사항 2가지 중 하나인 나토 미가입 및 중립국화를 수용하겠다는 의미다.
우크라이나는 오늘의 전쟁이 사실상 무력화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에 있다고 판단하는 만큼, 국제적인 약속이 한낱 종잇조각이 되지 않도록 하는 재발 방지 조치를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부다페스트 각서는 1994년 우크라이나가 보유 중이던 핵무기를 러시아로 이전하는 대신 미국과 영국이 우크라이나의 영토와 정치적 독립 보장을 약속한 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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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 보전 문제는 장기 논의 사안으로
안전보장 합의가 이뤄질 경우, 러시아의 핵심 요구이자 가장 복잡한 사안으로 영토할양 문제가 남는다.
우크라이나는 크름 지위와 동부 돈바스 분리 지역 문제를 일단 뒤로 미뤄둘 것을 제안했다.
아라카미아 대표는 “안전보장의 신속 발효를 위해 이들 지역 문제는 합의에서 일시적으로 제외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협상단을 이끌고 있는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실 보좌관에 따르면,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는 크름 지위와 관련해선 15년에 걸쳐 논의해 문제를 해결해나간다는 제안을 하고 있다.
크름은 우크라이나 남부 흑해에 위치한 반도로, 원래는 러시아 영토였다가 1954년 우크라이나에 편입됐다. 1991년에는 우크라이나 내 크름자치공화국이 성립됐고, 2014년 러시아군 점령하에 열린 주민투표에서 찬성 우세로 러시아에 귀속됐지만 국제사회의 인정은 받지 못했다.
크름 병합 사태 이후에는 우크라이나 동부·러시아측 서부 접경지인 돈바스 지역이 분쟁 지역으로 떠올랐다. 러시아군의 지원을 받는 친러 분리주의 반군이 지난 8년간 정부군과 충돌하며 내전을 일으킨 탓이다.
반군은 영토 3분의 1을 장악하고 별도의 인민공화국(각각 도네츠크·루한스크)을 선포했는데, 푸틴 대통령은 이번 침공을 강행하기 직전인 지난달 21일 두 지역을 독립국으로 승인했다. 그리고 “돈바스의 집단학살(제노사이드)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전쟁을 개시했다.
돈바스가 전쟁의 표면적 명분이 됐다는 점은, 러시아의 ‘통 큰 양보’를 기대하기 어려운 지점이기도 하다. 실제로 러시아 측은 이번 5차 평화회담에서 키이우와 체르니히우 군사활동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반면, 돈바스에서의 활동은 ‘집중’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우크라이나로선 크름 지위와 돈바스 독립을 인정한다면 ‘눈 뜨고 코 베이는 격’이지만, 이번 협상 국면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양면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크름과 동부 돈바스 문제를 “타협(compromisie)할 수 있다”며 여지를 남기는가 하면, “영토 보전은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번복하길 반복해왔다.
일단 가장 어려운 문제에 협상 여지를 남기면서, 우크라이나가 현재 가장 염원하는 휴전과 안전보장의 신속 발효에 매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결국 휴전과 안전보장 문제가 타결되면, 영토 문제는 정상 간 담판에서 추후 논의를 이어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영토 문제 해결의 어려움에 더해, 사실상 나토 가입이나 다름 없는 수준의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 요구를 러시아가 원안대로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문제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