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부인 옷값 사비로 냈다지만 4년 전엔 그 자랑거리 왜 감췄나 본질은 옷값 아닌 특수활동비 폐지 고위직 ‘세금횡령 면책특권’ 없애라
동아일보DB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나이 들수록 옷장 문 열 때마다 화가 난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입고 나갈 옷은 없는데 철철이 옷 해줄 능력 없는 ‘삼식이’ 남편이 미워진다는 거다. 내가 나이 먹어 옷태 안 난다는 생각은 못 하고 남 탓만 하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이기도 하다.
계절은 또 바뀌는데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의상 액세서리 구두 등 청와대가 공개를 거부한 의전비용과 특수활동비를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때라도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30일 밝힌 것처럼 “김 여사의 의상 구입에 쓰인 특활비는 한 푼도 없다. 사비(私費)로, 카드로 결제했다”고 똑 부러지게 밝혔다면 ‘×멜다’ 같은 험한 소리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이 대통령이고 2021년 연봉이 2억4065만 원이다. 대통령 부인이 남편 돈으로 좋은 옷 사 입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한국납세자연맹이 2018년 3월 정보공개를 청구한 것은 대통령 및 김 여사의 의전비용이 특활비에서 지급됐는지 여부였다. 김 여사의 옷값만이 아니라 대통령의 옷값도 함께 물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목적은 특활비 폐지였고 김 여사의 옷값은 ‘미끼’였기 때문이다. 역시나 다들 김 여사 옷값에만 신경 썼지 문 대통령의 고급 양복엔 관심도 없다.
넉 달 후 청와대가 김 여사의 옷을 사비로 산다고 답하지 않은 것은 의아하다. 탁현민의 뒤늦은 사비 주장을 믿기 힘든 이유다. 당시 대통령비서실은 공문을 통해 "(특활비) 세부 지출내역에는 국가안전보장, 국방, 외교관계 등 민감한 사항이 있어 공개하면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특활비 내역에서 김 여사의 옷값이나 수량 또는 사이즈 같은 민감 사항이 공개될 경우, 국민의 심신을 자극해 국익이 현저히 훼손될 우려가 있는 건 맞다. 만일 대선 전에 김 여사 옷값 논란이 터졌다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득표에서 최소한 10%포인트는 깎아먹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구나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이어 탁현민이 사비론을 강조한 30일, 전태수 JS슈즈디자인연구소 대표는 “2017년 5월 김 여사에게 구두 6켤레를 켤레당 25만 원에 판매했고 보좌관이 현금으로 결제했다”고 밝혔다. 문 정권의 나팔수 김어준의 표현을 빌리자면 ‘냄새가 나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기획재정부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 따르면 특활비란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외교안보, 경호 등 국정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를 말한다. 영수증 없이 쓸 수 있고 현금으로 지급되는 ‘묻지 마 예산’이어서 납세자연맹에선 귀족들의 ‘세금횡령 면책특권’으로 본다. 국정원과 청와대 등 19개 기관에 배정된 특활비가 작년에만 9838억 원이었다. 할 말은 아니지만 김 여사의 옷값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이에 비하면 거의 새 발의 피라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특활비를 둘러싼 ‘법무부·서울지검의 돈봉투 만찬사건’을 감찰했다. 공석이 된 서울중앙지검장 자리에 윤석열을 깜짝 발탁해 오늘날 대통령 당선인으로 마주하게 됐다. 임기는 신분사회를 연상시키는 특활비 폐지와 함께 끝냈으면 한다.
김 여사가 기를 쓰고 방문했던 노르웨이에선 총리가 예산을 쓰고도 영수증을 안 내면 형사책임은 물론 탄핵을 당할 수 있다. 모든 국민은 정직하게 세금을 낼 의무가 있다. 대통령도, 대통령 부인도 그래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