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서남부 비지니차 현지 르포
러 무차별 공격에 무너져 내린 마리우폴 주택가 미국 상업위성업체 맥사가 공개한 29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 위성사진. 러시아군의 무차별 포격과 공습으로 아파트와 주택 상당수가 무너져 내렸고 건물 잔해가 곳곳에 쌓여 있는 등 처참한 모습이다. 전날 마리우폴 당국은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도시 건물 약 90%가 파손됐다고 발표했다. 맥사테크놀로지 제공
“폴란드 등 서쪽 인접국 국경을 넘은 사람들은 자가용도 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에요. 형편이 안 좋은 사람들은 멀리 대피를 못 가고 국내로 이동할 수밖에 없어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시민 올리하 씨(50)는 가족 5명과 함께 서남부 소도시 비지니차로 피란을 오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올리하 씨 가족은 키이우를 포위한 러시아군이 아파트 등 민간 시설물을 본격적으로 포격하기 시작한 15일 피란을 결심했다. 버스와 기차 등 대중교통으로 오느라 꼬박 이틀이 걸렸다.
기자가 29일 찾은 인구 4000명의 소도시 비지니차는 현재 피란민 수가 5000명이 넘는다. 80km 거리에 인구 26만 명의 체르니우치가 있지만 큰 도시는 러시아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주변 소도시로 몰리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에도 우크라이나 피란민이 폭증하면서 곳곳에서 식량, 의료품 부족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조이스 음수야 유엔 인도주의 담당 사무차장은 CNN에 “첫 번째 유엔 호송대가 의약품 300t 이상, 다량의 음식, 물, 통조림을 피란민들에게 전달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피란민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 약탈, 성범죄 우려도 크다”고 했다.
전쟁이 한 달 넘게 지속되면서 우크라이나 피란민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는 29일 “지난달 24일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인 1100만 명이 집을 떠났다”고 발표했다. 전체 인구(4400만 명)의 4분의 1에 달한다. 이 중 국경을 넘어 폴란드 헝가리 등 인접국으로 간 피란민은 400만 명. 이들은 언론에도 집중 조명되며 각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650만 명은 더욱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전쟁 관리에 집중하고 있어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고 생필품, 의료품도 크게 부족하다.
비지니차=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