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단체, 독일 등으로 대피 지원… “惡인줄 알았던 獨이 손 내미네요”
러시아의 공습에도 우크라이나 키이우 집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홀로코스트 생존자 타탸나 주라블리오바 씨가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대피한 뒤 27일 AP와 인터뷰를 하며 눈물을 보이고 있다. 프랑크푸르트=AP 뉴시스
“아직도 제 안에 그때의 공포가 남아있는 줄은 몰랐어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사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타탸나 주라블리오바 씨(83)는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공습이 시작되자 80년 가까이 가슴에 넣어둔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주라블리오바 씨가 어린 소녀였던 1940년대 초, 그는 유대인 학살에 나선 나치 독일군을 피해 어머니의 손을 잡고 고향 오데사에서 카자흐스탄으로 피란을 떠났다.
이번 러시아 침공은 그의 삶을 80년 전으로 고스란히 되돌리고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어린 시절엔 공습 사이렌이 울리자마자 테이블 밑으로 달려가곤 했지만 이제는 너무 나이가 들어 지하 벙커로 뛰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저는 포격 소리가 들려도 아파트 안에 머물면서 폭탄이 나를 죽이지 않기를 기도해요.”
주라블리오바 씨의 목적지는 공교롭게도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독일이었다. 프랑크푸르트의 한 양로원에 도착한 그는 27일 AP통신에 “독일이 과거에서 교훈을 얻어 이제 우리에게 선한 일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키이우에 있던 다른 홀로코스트 생존자 갈리나 울랴노바, 라리스 주엔코 씨도 주라블리오바 씨와 같은 구급차를 타고 이곳으로 대피했다. 거동이 어려운 울랴노바 씨는 무려 7년 만에 자신의 8층 아파트 밖을 나왔다. 지원 인력 두 명이 그를 들것에 싣고 계단으로 내려왔다.
당뇨환자인 주엔코 씨 역시 구급차에서 인슐린을 투약받으며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할 때까지 26시간을 견뎠다. “어렸을 때 엄마랑 우즈베키스탄으로 피란을 갔어요. 먹을 것은 하나도 없고 큰 쥐가 많아 너무 무서웠어요. 내 평생 모든 독일인은 악인인 줄 알았는데 이젠 우리에게 먼저 손을 내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