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0세 이상 한국인의 평균 키는 남성 172.5cm, 여성 159.6cm로 조사됐다고 국가기술표준원이 30일 밝혔다. 40년 전보다 남성은 6.4cm, 여성은 5.3cm 커졌다. 특히 키에서 하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이른바 ‘서구형 롱다리’로 신체 구조가 바뀌는 추세다. 20∼40대 남성은 키가 커지는 것보다 살이 찌는 속도가 더 빨랐다. 복부비만의 지표가 되는 허리둘레가 40년 전보다 연령대별로 적게는 10.8cm, 많게는 13.9cm 늘었다. 여성은 2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에서 허리둘레가 줄어들었다.
▷19세기 말 조선을 방문한 이사벨라 비숍 여사는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이란 책에서 “한국인의 체격은 일본인보다 훨씬 좋다”고 적었다. 동시대 한일 양국의 유골을 분석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한국 남성의 키가 평균 161cm로 일본 남성보다 6cm가량 컸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는 한일 양쪽의 키가 비슷해졌고, 한국의 산업화 이후 한국인의 키가 일본인을 다시 앞질렀다. 산업화로 인한 식습관 변화가 신체 성장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1868년 일본 메이지유신은 ‘요리유신’ ‘음식혁명’으로도 불린다. 당시 일왕은 소와 닭 등을 죽이지도 먹지도 말라는 육식금지령을 1200년 만에 해제했다. 육식으로 체형을 서구처럼 크게 바꾸는 것이 탈아입구(脫亞入歐), 즉 서구화의 지름길이라고 본 것이다. 육식 장려 등으로 이후 일본인의 신체 구조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화됐다.
▷세계 최장신 국가는 남성 기준으로 키가 182cm가 넘는 네덜란드다. 네덜란드에 가면 옷 치수와 생활용품의 크기가 한국과 너무 달라서 불편을 겪은 사례가 많다. 국가기술표준원이 40년 동안 신체 지수를 꾸준히 측정해 온 이유는 한국인의 몸에 맞는 제품 설계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데이터를 반영해 45년째 그대로이던 지하철의 좌석 크기를 5년 전 키운 적도 있다. 그런데 다른 인종인 네덜란드와 한국의 신체 지수 격차보다 동족인 남북간 격차가 더 벌어졌다. 산업화 이전의 조선시대로 되돌아간 것과 같은 북한의 허약한 신체 지수를 지켜보는 것은 씁쓸하다.
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