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응위원회가 2019년 1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1.29/뉴스1
부하 여성 장교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해군 대령에 대해 대법원이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을 인정할 만한 사정이 있다”며 무죄 판결을 파기했다.
같은 부하 여성 장교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해군 소령은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31일 군인등강간치상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해군 대령(당시 중령·함장)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피해 장교의 직속 상관이었던 B씨는 2010년 9~11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를 10회 강제추행하고 2회 강간한 혐의를 받는다.
피해 장교는 B씨와 진행한 신상면담에서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고백했는데 B씨가 도리어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함장이었던 A씨는 피해 장교가 B씨에 의해 임신한 뒤 중절수술을 받자 이를 빌미로 2010년 12월 강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을 맡은 해군본부 보통군사법원은 A씨에게 징역 8년을, B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을 맡은 고등군사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2018년 11월 두 사람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B씨에 대해서도 “범행 경위에 관한 피해자 진술을 믿을 수 없다”며 “피해자의 진술에 따르더라도 B씨가 피해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을 해 피해자를 추행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후 2심 판결에 불복한 군검찰이 상고해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쟁점이었는데 대법원은 A씨 행위에 관한 피해 장교의 진술에 신빙성을 인정할 사정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수사 초기 다소 불명확하게 진술했더라도 이를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는 사정으로 삼을 수 없다”며 “피해자 진술의 진실성이 사건 관련자들의 구체적인 진술로 뒷받침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는 피해자의 용인 아래 자연스럽게 신체접촉 행위를 했다는 취지로 말하지만 그 구체적 내용이 통념에 비춰 자연스럽지 않을 뿐 아니라 합리성이 없다”며 “이러한 사정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간접사실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피해자 진술 신빙성에 의심이 든다는 일부 사정만으로 진술 전부를 배척한 원심 판단은 잘못됐다”며 “군인등강간치상죄의 폭행, 고의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도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A씨와 달리 B씨는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이날 군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B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B씨의 혐의에 대해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한 정황이 있고 따라서 검찰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B씨의 유죄를 증명하지 못했다는 원심의 판단을 수긍할 수 있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A씨와 B씨에 대한 판단이 갈린 이유에 대해 “사건의 구체적 경위,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 피해자의 진술 등이 서로 다르다”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나 그 신빙성 유무를 기초로 한 범죄 성립 여부가 달리 판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간 피해 장교와 여성·시민단체들은 수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유죄 판결을 촉구해왔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군인권센터 등 10개 단체가 모인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공대위)는 이날 낮 12시 대법원 후문 앞에서 대법원 선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