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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문제로 중병 父 방치해 숨지게 한 20대 징역 4년 확정

입력 | 2022-03-31 14:16:00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뉴스1


중병을 앓던 아버지를 간병하다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방치해 숨지게 한 20대에게 징역 4년이 확정됐다. 아들이 아버지를 고의로 숨지게 했다는 혐의(존속살해)가 대법원에서 인정된 것이다. 다만 1,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경제적 사정 등을 고려해 존속살해죄의 권고 형량(징역 5~12년)보다 낮은 형을 선고했고, 대법원도 이를 받아들였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31일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된 A 씨(23)의 상고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외동아들인 A 씨는 10년 전부터 단 둘이 살아오던 아버지 B 씨(56)가 2020년 9월경부터 심부뇌내출혈과 지주막하출혈 증세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치료비를 부담하기 어려워지자 지난해 4월 B 씨를 퇴원시켰다.

퇴원 당시 B 씨는 팔다리 마비 증상으로 스스로 음식을 먹기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B 씨를 담당한 의사들은 ‘보행이 불가능하며 모든 일상생활에 전적으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다’, ‘지금 퇴원하면 환자의 생명이 위태롭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A 씨는 퇴원 이후 B 씨에게 처방약을 일절 제공하지 않았다. 하루 3번 섭취가 필요한 치료식을 일주일 동안 총 10번만 제공하기도 했다. B 씨가 영양실조 상태에서 폐렴 등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약 8일 동안은 치료식과 물의 제공도 중단했다. A 씨는 “2시간마다 아버지의 체위를 변경해야 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었다”며 “혼자서는 병 간호를 담당할 능력이 되지 않았고, 아버지가 회복할 가능성이 전혀 없어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A 씨는 경찰 수사 단계에선 존속살해 혐의보다 형량이 낮은 존속유기치사 혐의만을 인정했다. 그러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는 “그냥 돌아가시게 둬야겠다”, “아버지가 사망할 때까지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식으로 진술하며 고의성을 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수사 단계 자백 진술 등을 종합했을 때 존속살해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A 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동기와 경위가 어쨌든 혼자서는 거동이 불가능한 아버지를 의도적으로 방치해 사망하게 한 범행은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면서도 “피고인은 어린 나이로 아무런 경제적 능력이 없어 입원 치료 중단 및 퇴원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아버지를 사망하도록 놔둬야겠다고 결심한 이후로도 아버지가 배고픔이나 목마름을 호소하면 물과 영양식을 주는 등 포기와 연민의 심정이 공존하는 상태였다”고도 했다. 이어 “피해자를 방치한 행위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출소 이후에도 아버지 사망에 관해 깊은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A 씨는 징역 4년이 과도하다며 항소했지만, 항소심은 1심 판단에 문제가 없었다며 이를 기각했다. 대법원도 A 씨의 상고를 기각하며 존속살해의 고의를 인정했다.


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