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뉴스1
중병을 앓던 아버지를 간병하다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방치해 숨지게 한 20대에게 징역 4년이 확정됐다. 아들이 아버지를 고의로 숨지게 했다는 혐의(존속살해)가 대법원에서 인정된 것이다. 다만 1,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경제적 사정 등을 고려해 존속살해죄의 권고 형량(징역 5~12년)보다 낮은 형을 선고했고, 대법원도 이를 받아들였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31일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된 A 씨(23)의 상고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외동아들인 A 씨는 10년 전부터 단 둘이 살아오던 아버지 B 씨(56)가 2020년 9월경부터 심부뇌내출혈과 지주막하출혈 증세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치료비를 부담하기 어려워지자 지난해 4월 B 씨를 퇴원시켰다.
퇴원 당시 B 씨는 팔다리 마비 증상으로 스스로 음식을 먹기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B 씨를 담당한 의사들은 ‘보행이 불가능하며 모든 일상생활에 전적으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다’, ‘지금 퇴원하면 환자의 생명이 위태롭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수사 단계 자백 진술 등을 종합했을 때 존속살해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A 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동기와 경위가 어쨌든 혼자서는 거동이 불가능한 아버지를 의도적으로 방치해 사망하게 한 범행은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면서도 “피고인은 어린 나이로 아무런 경제적 능력이 없어 입원 치료 중단 및 퇴원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아버지를 사망하도록 놔둬야겠다고 결심한 이후로도 아버지가 배고픔이나 목마름을 호소하면 물과 영양식을 주는 등 포기와 연민의 심정이 공존하는 상태였다”고도 했다. 이어 “피해자를 방치한 행위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출소 이후에도 아버지 사망에 관해 깊은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A 씨는 징역 4년이 과도하다며 항소했지만, 항소심은 1심 판단에 문제가 없었다며 이를 기각했다. 대법원도 A 씨의 상고를 기각하며 존속살해의 고의를 인정했다.
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