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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줌인]쉬운 영화의 역습… ‘코다’의 영리한 클리셰 활용법

입력 | 2022-04-01 03:00:00

영화 ‘코다’에서 주인공 루비(에밀리아 존스)가 가족들과 함께 어선에 탄 장면. 판씨네마 제공

손효주 문화부 기자


‘코다’는 쉬운 영화다. 보이는 게 다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을 거라는 생각을 접어뒀던 이유다. 이 영화는 감독이 심연에 숨겨놓은 메시지를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매지 않아도 된다. 줄거리 서너 줄만 보면 이야기 전개가 다 보인다. 클리셰까지 갖췄다. 명작의 주적, 클리셰를 곳곳에 배치한 영화가 최고상을 받을 가능성은 낮지 않을까 한 것이다.

아카데미의 최고상을 타려면 모름지기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고급 은유가 어딘가에 깔려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범인(凡人)들이 지적 능력을 자책하게 만들거나 반대로 ‘예술 뽕’만 차오른 감독을 힐난하게 하는 그런 유의 영화 말이다.

전문가들은 ‘파워 오브 도그’의 수상 가능성을 높이 봤다. 이 영화는 클리셰를 깨부순다. 1925년 미국 몬태나주 초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겉모습은 서부극. 그러나 이는 고도의 위장술이다. 영화엔 총잡이, 결투 등 뻔한 장면이 하나도 없다. 그 대신 카우보이들의 리더 필과 그의 동생 조지, 남편과 사별한 후 조지와 결혼하는 로즈와 그의 아들 피터 등 네 사람의 심리 묘사가 매 장면을 꽉 채운다. 영화 속 대자연은 장엄함의 끝. 심리 묘사는 정교함의 절정이다. 한 모금씩 번갈아가며 나눠 피우는 담배, 눈빛만으로 숨 막히는 긴장감을 빚고 동성애 코드를 은유해내는 제인 캠피언 감독의 연출 솜씨는 마법이다. 감독은 영상으로 대작 시를 써내려간다.

그런 만큼 짐작의 영역이 많다. 명쾌한 답은 없다. 이 때문에 소름 돋는 반전마저 반전인지 모르고 넘어가는 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일부 관객에겐 ‘내 해석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영화를 다시 보고 되짚어본 뒤에야 ‘뒷북 전율’을 느끼고 호들갑을 떨게 된다. 자백하자면 필자 이야기다.

‘코다’는 해석이 필요 없다. 루비는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한 집 딸. 농아인인 부모, 오빠 등 가족 중 유일하게 듣고 말할 수 있다. 가족들과 일하며 입과 귀가 되느라 학교생활도 버겁다. 친구들은 장애와 비린내를 조롱한다. 그러다 합창단에 들어가 재능을 발견한다. ‘참스승’은 루비를 음대에 보내려 한다. 얼핏 클리셰 범벅이다.

그러나 클리셰를 활용할 뿐이다. 친숙한 설정으로 긴장을 놓게 하되 “영화 참 편하게 만드네”라는 비판이 나오지 않도록 디테일로 차별화한다. ‘뻔한데 뻔하지 않게’ 줄타기 한다. 사실 클리셰와의 전면전에 나섰다가 영화가 산으로 가버리고 감독의 나 홀로 공감으로 끝나버린 영화를 여러 번 봐왔다. 클리셰를 배척만 할 수도 없는 이유다.

루비는 자신의 희생에 대한 불만을 곧잘 토로한다. 루비 부모는 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이기적인 면모도 보인다. 부모는 사타구니 가려움증 진료에 딸을 수어 통역사로 데려가고 “2주간 성관계를 하지 말라”는 진단에 “그렇게는 못 한다”고 손사래 치는 철없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현실적인 디테일을 더해 자애로운 부모, 천사 같은 딸이라는 클리셰를 영리하게 변주한다.

가장 큰 장점은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는 “이래도 안 울면 사람도 아니다”라고 압박하는 클리셰 중무장 신파 영화를 많이 봐 왔다. 주인공들은 오열하는데 혼자만 울지 않는 짐승이 돼버린 경험이 숱하다. 반면 이 영화는 주인공들은 울지 않는데 관객은 대놓고 울게 된다.

여기엔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가 큰 몫을 한다. 딸의 콘서트에 가지만 부모에겐 무음의 현장일 뿐. 부모는 조금 당황하다 관객들 반응을 유심히 살핀다. 뒤늦게 박수를 치고 엄마는 환하게 웃는다. 감독은 이를 담담히 보여주되 음을 소거한다. 눈물의 선택권은 관객에게 던진다. 관객들은 협박당한 것처럼 운다.

한 편은 클리셰를 거부했고, 한 편은 적절히 사용했다. 결과적으로 두 전략은 모두 성공적이었다. 아카데미는 월드컵이 아니기에 ‘코다’가 이겼다고 ‘파워 오브 도그’ 제작진이 잔디를 쥐어뜯으며 울 일도 아니다.

다만 아카데미가 전초전으로 여겨지는 골든글로브에서 ‘코다’를 제치고 작품상을 받은 ‘파워 오브 도그’ 대신 ‘코다’에 힘을 실어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정치적 올바름’을 의식한 결과라고 하기엔 ‘파워 오브 도그’도 그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짐작건대 이번만큼은 ‘해석의 영역’에서 벗어난 장벽 낮은 영화에 힘을 실어준 게 아닐까. 뻔해서 모두가 즐길 수 있되 공들인 디테일로 모두를 울리는 보편적인 작품에 보내는 찬사 아니었을까.

완전히 다른 두 걸작이 벌인 대결과 이변은 영화제 이후로도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시상자의 흔한 농담 클리셰를 파괴하겠다는 듯 따귀를 날려버린 윌 스미스 덕(?)에 여운이 금세 휘발해버린 점은 아쉽지만 말이다.

손효주 문화부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