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서남부 현지 르포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체르니우치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우크라이나 여성이 AK소총 사격 훈련을 받고 있다. 여성 10여 명은 이날 난생처음 총을 들어보면서도 결의에 찬 눈빛으로 훈련에 임했다. 우크라이나군 소속인 교관은 “훈련 인원의 50%는 여성”이라고 했다. 체르니우치=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체르니우치=김윤종 특파원
“방아쇠를 당기기 전 눈으로만 확인해선 안 됩니다. 귀로 소리를 들어 총의 상태를 점검하고, 몸으로 반동을 느껴 보세요. 자, 발사.”
기자도 이날 우크라이나 여성 10여 명과 함께 사격 훈련을 받았다. 군복무 시절 M16 소총을 다뤄 본 적이 있지만 훈련을 따라가기 만만치 않았다. 여성들은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동포들을 생각하며 진지하게 교육에 임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서서쏴’ ‘앉아쏴’ ‘숨어쏴’ 등 자세를 취했다. 총기 분해법을 배울 땐 꼼꼼히 필기했다.
마케팅 회사에서 일하는 다샤 씨(31)는 “사람 죽이는 연습을 하는 나 자신이 못마땅할 때도 있다”고 했다. “무기는 인간의 악함에서 나온 산물이지만 저는 그 악함을 이용해 러시아군과 싸울 겁니다. 우리를 지켜야 하니까요.”
우크라 초등교 사격훈련, 절반이 여성… “죽음 두렵지만 싸울것”
“내 가족 친구 조국위해 모두 뭉쳐” AK47 소총들고 실전같은 훈련
우크라이나軍 소속 훈련 교관 “교육후 금세 익숙… 민병대 합류도”
대학생들 “러에 종전 구걸 말아야”… 젤렌스키 “영토 지키기 위해 싸울것”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군대 경험이 없고 건강이 안 좋더라도 입대하고 있어요. 언제든 우리 도시도 러시아의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저도 싸우려 합니다.”
지난달 30일 우크라이나 체르니우치의 한 초등학교에서 진행된 사격 훈련에 참여한 언론인 나스차 씨는 “죽음이 두렵고 피를 흘리기 싫지만 내 가족과 친구, 조국, 나아가 자유를 위해 모두가 뭉쳤다”고 했다.
○ 대학생들 “러에 종전 구걸 말아야”
훈련을 진행한 우크라이나군 소속 교관 드미트로 씨(42)는 “여기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총을 쏠 줄 모르지만 교육을 받은 후 금세 총기를 다룰 수 있게 돼 민병대에도 합류한다”며 “훈련 인원의 50%는 여성”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와 함께 사격 교육을 받은 훈련생 10여 명도 모두 여성이었다. 드미트로 씨는 군 복무 시절 M16 소총을 다뤄본 경험이 있는 기자에게 “당신 군대에 다녀온 게 맞느냐. 우크라이나 여성들만 못하다”며 “AK-47 소총은 1947년에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신뢰할 만한 동구권의 핵심 무기”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은 최근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를 포위하던 병력의 20% 정도를 동부 돈바스 등 지역에 재배치했다. 러시아가 동부 지역을 점령하는 쪽으로 전략을 선회한 배경에는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이 큰 영향을 미쳤다. 13만 명 규모의 민병대가 러시아군에 맞서 게릴라전을 펼친 것도 주효했다는 평가다.
○ 젤렌스키 “영토 지키기 위해 싸울 것”
이르핀 탈출한 노인 위로하는 우크라軍 병사 지난달 30일 우크라이나 병사(왼쪽)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도시인 이르핀을 빠져나온 피란민을 위로하고 있다. 올렉산드르 마르쿠신 이르핀 시장은 “우크라이나군이 이르핀을 완전히 되찾았지만 도시의 절반 이상이 파괴됐다”고 발표했다. 이르핀=AP 뉴시스
미국도 러시아가 병력을 재배치하고 있을 뿐 군 철수는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최근 24시간 동안 키이우 주변에 배치한 소규모 군대와 기동부대인 대대전술단을 재배치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돈바스 지역에 러시아가 지원하는 민간 용병 조직인 와그너그룹 용병 1000여 명이 배치됐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돈바스를 우크라이나에 내주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4월 1일 온라인 형식의 회담을 열어 휴전협상을 재개한다.
2008년 옛 소련 국가인 조지아에서 분리·독립을 선포했던 남오세티야는 이날 공교롭게도 러시아로 편입을 하기 위한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분리·독립을 시도해 온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승인한 뒤 이를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러시아가 조지아로 전선을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체르니우치=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