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PGA투어 최다 17시즌 연속 출전 철저한 자기 관리 대명사 진정한 프로 정신의 본보기 찬사 은퇴 후 주니어 멘토로 제2인생
꾸준함의 대명사 홍란이 17년 KLPGA투어 정규투어 생활을 마감하고 올해부터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운이 좋았고 주위 도움이 컸다”고 말하지만 철저한 자기관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역대 최다 17시즌 연속 출전 기록을 남겼다. 박준석 작가 제공
한국 골프 역사의 한 페이지 장식한 레전드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홍란은 2022시즌 개막을 눈앞에 둔 요즘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 무척 낯설다. “불과 지난해 이맘 때만해도 KLPGA 선수 세미나는 잘 했는지, 바뀐 규정은 더 없는지 후배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동계훈련을 마무리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시즌 시작을 손꼽아 기다리던 때였겠죠. (은퇴하고 나니) 이젠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몸과 마음을 여유롭게 지내려 합니다.”“아빠 캐디와 합작한 우승이 가장 기억에 남아”
홍란이 32세 때인 2018년 브루나이오픈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KLPGA투어에서 개인 통산 4승을 올린 홍란은 골프를 관둬야 하나 방황하던 시절에 찾아온 값진 우승이라고 했다. KLPGA 제공
투어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에게 순간순간이 다 기억에 남을 터. 그래도 ‘명장면 톱3’를 뽑아달라고 했다. 3개만 꼽으려니 아쉽다는 그는 2번째 우승 무대였던 2018년 레이크사이드여자오픈에 엄지를 세웠다. “첫 우승은 아니었지만 아빠가 캐디를 해주시면서 처음 우승을 합작했던 대회였고, 첫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되돌아보니 아빠랑 만들어낸 추억이 생생했고 승리까지 가졌다는 게 진짜 값진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2018 브루나이 여자오픈 우승. 그는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때였고 내가 더 이상 투어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나 고민할 때 찾아온 우승이었기 때문이다. 삼천리 소속으로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이 됐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홍란이 경기 도중 드라이버 티샷을 하고 있다. 10대 때 프로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대를 거쳐 30대 후반까지 줄곧 투어를 지키며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KLPGA 제공
본인이 가장 의미 있게 여기는 기록은 단연 ‘17시즌 연속 시드 유지’다. “가장 애착이 갑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 기록이 가장 늦게 깨지기를 바랍니다. 이 기록이야 말로 선수 생활을 하면서 홍란이 가졌던 마음가짐, 체력관리 등 모든 걸 표현해주고 내 자신에게 칭찬할 수 있는 값진 선물 같습니다.”
지유진 삼천리 골프단 감독은 “성실하고 현명했던 선수”라며 “기록은 언젠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지만 17년 시드 유지는 부상도 없어야 하고 운도 따라야 하기 때문에 당분간 깨기 어려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스폰서와 오랜 관계가 내게는 행운”
홍란이 용품계약사인 오리엔트골프(야마하) 이동헌 대표에게 1000라운드 달성 기념케이크와 카드를 받고 있다. 홍란은 오리엔트골프와 2014년부터 줄곧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오리엔트골프 제공
야마하를 수입하는 오리엔트골프 이동헌 대표는 “홍란 프로는 진정한 프로의 모습을 지녔다. 성인이 돼도 부모의 등 뒤에 숨는 프로가 있는가 하면 계약 조건을 조율할 때도 혼자 회사를 찾아 꼼꼼하고 세심하게 검토했다”고 말했다.
오리엔트골프는 2014년부터 후원해 온 홍란이 중요한 기록을 세웠을 때 축하 자리를 마련하며 마치 회사 직원의 경사처럼 함께 기뻐해 줬다. 홍란은 “야마하는 든든한 지원군 같았고 오래 같이 하고 싶은 회사라고 생각했다”며 “클럽은 골프를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자신감의 원천이다. 제 기록의 거의 야마하와 함께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고 전했다.
“넓게 멀리 보는 후배들이 많이 나와 주기를”
홍란은 은퇴 후 삼천리 골프 아카데미에서 꿈나무 육성을 도울 계획이다. 삼천리 투게더오픈에 출전해 한 주니어 골퍼를 가르치고 있는 홍란. KLPGA 제공
홍란은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은퇴 경기도 치를 계획이다. 아직은 확정된 건 아니지만 은퇴 경기 전에 1,2개 대회에 출전한 뒤 고별 무대에 오를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얘기. 그래서 운동도 재개했다. “골프선수라면 부상이 없는 경우가 드물어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운동은 꾸준하게 하고 있어요. 오히려 골프가 아닌 건강을 위해 하는 운동이라서 더 즐거운 마음으로 하게 되는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좋아해서 헬스장을 주 2~3회 정도 이용하고 있고요. 은퇴 경기도 남아 있으니 골프 연습도 틈틈이 하고 있습니다.”
홍란은 지난 연말 KLPGA 시상식에서 신설된 ‘아름다운 기부상’ 첫 수상자가 됐다. 1000라운드 출전을 기념해 1000만 원을 KLPGA에 기부하는 등 평소 선행에도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즌을 시작하는 후배들을 향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지금 너무나 긴장되면서 또 설레는 마음일거 같다. 준비 많이 한 만큼 기량 잘 보여 줄 수 있도록 시즌 전에 참가 대회 수나 스케줄을 잘 계획하고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좀 더 넓고 멀리 볼 수 있을 겁니다. 파이팅.”
인생 2막을 막 시작한 홍란의 목소리가 밝기만 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