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가 3년 만에 재개된 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뿐만 아니라 교육부, 통일부 등 다른 정부부처들도 검찰 사정권 안에 든 모양새다. 당시 임기를 남기고 사퇴했던 일부 기관장들이 ‘사퇴 압박’ 등을 주장하면서 검찰 수사는 배경을 규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수사 과정에서 ‘윗선’의 관여가 포착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검은 지난 2019년 3월께 당시 자유한국당으로부터 산업통상자원부를 포함해 문재인 정부 중앙행정부처 전반에서 ‘블랙리스트’를 작성,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사퇴 종용이 있었다는 취지 의혹 고발장을 받았다.
고발장을 보면 자유한국당은 국무총리실을 비롯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일부, 교육부 등에서 광범위하게 산하 공공기관 인사들 찍어내기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퇴 종용의 배경에 청와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전직 기관장들의 증언이 나온다.
뉴시스가 확보한 손기웅 당시 통일연구원장과 당시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관계자 A씨 사이의 통화 녹취록을 보면 사퇴 압박 배경에 청와대 등 윗선이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 나온다.
해당 녹취록에 따르면 손 전 원장이 “3대 기관장 나갈 때 제 이름이 청와대에서 나왔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더 이상 망설일 이유도 없다”고 말하자 A씨는 “다른 분들은 (퇴임 이야기가) 11월 초에 나왔다”고 답했다.
손 전 원장이 “BH라는게 청와대냐. 국가안보실이냐. 어디냐”고 묻자 A씨는 “저희는 인사수석실에서만 통보를 받는다”고 답하는 내용이 나온다. 사실상 사퇴 종용이 청와대 인사수석실로부터 내려온 지시라는 의미이다. 이 같은 의혹은 손 전 원장의 사퇴 당시에도 언론을 탔고, 정부 측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국전력 발전자회사 4곳으로부터 제출받은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에 따르면 한 발전사 전직 사장의 업무추진비 내역에는 지난 2017년 9월6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차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해당 호텔은 발전자회사 전직 사장들이 사퇴 요구를 받았다고 지목했던 장소로 지난 2019년 당시 자유한국당에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당시 자유한국당 청와대 특별감찰반 의혹 진상조사단장 김도읍 의원은 “담당 국장이 발전사 사장들을 개별적으로 광화문에 있는 한 호텔로 불러 사표 제출을 종용했다”며 “환경부와 마찬가지로 블랙리스트가 작성됐다”라고 밝혔다.
법조계는 관계 당사자들이 청와대 등 윗선을 언급하고 있는 만큼 검찰 수사가 결국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결을 따라 갈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온다. 수사가 사퇴를 직접 종용한 것으로 의심받는 실무진에서부터 나아가 윗선을 겨냥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방의 한 검사는 “중간 역할을 했다고 언급되는 이들이 인사권한이 있는 것도 아닌 만큼, 수사는 윗선으로 뻗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