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의 역사를 만든 전설들이 다시 모였다.
‘불사조’ 박철순과 ‘미스터 OB’ 김형석, ‘홍포’ 홍성흔, ‘니느님’ 더스틴 니퍼트가 2일 잠실 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한화 이글스의 2022 신한은행 쏠 KBO리그 정규시즌 시작을 힘차게 열었다.
두산은 창단 40주년을 맞아 올 시즌 출발을 레전드들에게 맡겼다.
한 때는 집보다도 더 자주 잠실을 드나들었지만 이제는 오랜만에 찾은 그라운드가 낯설기만 하다.
박철순은 “며칠 전 시구 연락을 받고 선수 때 선발 통보를 받고 설렌 기분이 들더라.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었다”며 웃었다. 김형석도 “잠실 구장에 몇 십년 만에 온 것 같다. 야구 경기를 하러 온 기분이 든다”며 미소지었다.
몇 년전 유니폼을 벗은 홍성흔과 니퍼트도 감회가 새롭긴 마찬가지다. 홍성흔은 “이 분들과 함께 시구를 한다고 했을 때 꿈만 같았다. 잠도 한숨 못자고 왔다”며 설렘을 드러냈다. 니퍼트는 “잠실 야구장에 올 땐 주차장에 도착할 때부터 긴장된다. 너무 기쁘고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들이다. 프로야구 원년 멤버인 두산이 강팀으로 굳건한 자리를 잡고 있는 데는 이들의 활약이 바탕이 됐다.
홍성흔은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인생 최고의 기억”으로 꼽았다.
이들은 모두 두산을 이끌고 있는 김태형 감독과 함께한 인연이 있다.
‘선배’ 박철순은 “내가 나이 먹고 힘들어할 때 마운드에 올라오면 한참 선배인 나한테 욕하고 그랬다”고 깜짝 폭로했다.
재연까지 해보이며 김 감독의 현역시절을 흉내낸 박철순은 “내가 41살, 선수로는 고령일 때였다. 힘들게 던지다 얻어터지고 사구를 남발하면 (포수가) 올라와서 ‘몸이 안 좋으세요?’ 묻는 게 정상이지 않나”라며 동의를 구했다.
그런 모습도 밉지 않은 후배였다. 박철순은 “예전부터 김 감독에게 ‘자네는 은퇴하면 좋은 지도자가 될 거야’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다”며 “포용력이나 지도력이 선수 때부터 있었다”고 치켜세웠다.
홍성흔도 “감독님을 보고 곰의 탈을 쓴 여우라고 하지 않나. 진짜 정답이다. 상대 심리도 잘 이용하신다”며 “나보다 춤도 잘 추신다. 나에게 춤을 알려주시기도 했다”고 고백해 웃음을 안겼다.
니퍼트는 “기록만 봐도 굉장한 감독이라는 걸 증명했다. 존경한다”고 말했다.
올해 두산의 전력은 예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래도 두산을 누구보다 잘 아는 레전드들의 믿음은 변하지 않는다. 전력 그 이상의 힘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김형석은 “두산은 선수간 유대감이나 승부욕이 남다른 팀”이라며 “김태형 감독이 계속 좋은 성적도 냈다. 기본은 할 것”이라며 기대했다.
박철순도 “이제는 당연히 포스트시즌에 올라갈 거라고 생각해 페넌트레이스 결과는 안 보게 된다”며 “두산은 한국 프로야구에 꼭 필요한 구단”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올해 왕좌 탈환도 응원했다.
니퍼트는 “7년 간 좋은 기록을 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이긴 적도, 진 적도 있다. 졌을 때 아쉬움은 마음에 많이 남더라”고 곱씹으며 “이제 다시 우승하기 위해 시즌을 시작한다. 졌을 때 실망하는 ‘헝그리 정신’을 가지고 올해는 꼭 우승했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레전드들의 방문에 후배들은 승리로 화답했다.
두산은 이날 한화를 6-4로 제압, 개막전 통산 24번째 승리를 달성했다. 역대 개막전 최다승 기록을 올해도 다시 썼다.
김태형 감독은 경기 후 “팀의 레전드들이 좋은 기운을 준 것 같다”며 선배들의 응원에 고마워했다.
이어 “허경민이 1번타자로서 역할을 훌륭히 했다. 2회 양석환의 동점홈런으로 분위기를 다시 가져올 수 있었다. 필요한 순간마다 선수들의 집중력이 빛났다”며 “로버트 스탁은 정규시즌 첫 경기였는데 생각보다 선발로 역할을 잘해줬다. 임창민도 위기 상황에서 잘 막았다”고 짚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