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디지털 vs 아날로그. 대칭적으로 생각한다면 두 단어는 반대말입니다. 그런데 아니지요. 아날로그는 디지털이 파생시킨 개념입니다. 디지털 이전엔 모든 것이 아날로그였으니까요. 선배 아날로그가 후배 디지털을 탄생시킨 것이 아니라, 후배 디지털 덕분에 선배가 ‘아날로그’란 이름을 얻은 셈이죠.
레트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움이 없었다면 옛것을 찾는 일도 없었겠죠. 다만 옛것이라고 모두 레트로·빈티지로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세월을 넘어서는 보존 가치가 있어야 평가를 받겠지요. 신기술 시대에 왜 레트로가 관심을 받을까요? 추억 감성도 있지만 레트로 열풍 이면엔 디지털 포비아가 있습니다.
▽인류는 생산성을 향상시키며 역사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경제력이 정체되면 역사도 멈췄습니다. 인류의 발전은 생산력이 뒤받쳐줘 가능했죠. 그리고 늘 새로운 기술이 있었습니다. 즉 발전의 원동력은 신기술이라고 연결됩니다. 문제는 신기술이 거꾸로 퇴행에 악용되기도 한다는 것.
20세기 초반부터는 한반도 땅에도 전깃불이 퍼졌습니다. 주경야독이 가능해지자 서당이 많이 생겼다고 하는데요, 과거제도도 없어졌는데 신문물 교육 대신 도로 서당 공부가 유행했다니 역설적입니다.
21세기엔 IT 디지털 미디어가 폭증했습니다. 인류의 소통 문화는 향상됐을까요. 소통량이 늘고 누구에게나 발행권이 주어지며 개인 미디어 시장이 커졌습니다. 그와 더불어 가짜뉴스와 혐오콘텐츠, 책임지지 않는 주장과 발언이 쏟아집니다. 일부 사용자들은 게임 미디어에 중독 돼 일상을 누리지 못합니다.
▽신기술 포비아(phobia)는 단순하게 새로운 기기에 적응 못 하는 불안감이 아닙니다. 미래세계에 대한 거부감, 막연한 반감 정서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부작용을 일으키니까요. 아직은 통제를 완전히 할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이 덜 된 ‘불편한 현실’입니다.
코닥필름은 요즘 옷으로 부활해 있습니다.
▽레트로는 ‘현실’이 아니죠. 현실만 일단 벗어나면 모든 것이 낭만적입니다. 중장년층에겐 추억을, 젊은이들에겐 신기한 호기심을 줍니다. 모두에게 판타지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자신이 소유한 물성의 가치를 꾸준하게 뽐냅니다. 이미 검증이 충분히 된 매력이죠. 불안한 미래가 아니라 이미 통제됐던, 현재도 통제 가능한 ‘두렵지 않은’ 물성입니다.
2021년 3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19 레트로모빌 빈티지 자동차 엑스포’에 공개된 1938년형 ‘부가티 57C 카브리올레 강글로프’ 모델. / AP 뉴시스 / 2019.2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