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엄마들은 다 같지 않다. 자식에게 헌신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과 꿈이 자식보다 먼저라고 여기는 엄마도 있다. 학대로 트라우마를 심어준 엄마도,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며 무서운 집착을 보이는 엄마도 있다.
봄 극장가에는 각양각색의 엄마상을 담은 ‘엄마 영화’가 개봉했거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각자의 엄마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며 포스트코로나를 준비하는 극장가에 미약하게나마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모으고 있다.
● 괴팍함 아래 숨겨둔 모성애
85세 말임(김영옥)은 아들 종욱(김영민)이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오겠다며 전화하자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전화를 끊어버린다. 그래놓고는 장을 보러 간다. 찌개를 끓이고 고기를 볶고, 계단 청소까지 해놓고 아들을 기다린다.
영화는 혼자 있을 말임을 위해 아들이 고용한 요양보호사 미선(박성연)과 말임, 아들 가족간에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어디에나 있는 노년의 엄마를 세밀화처럼 그려낸 85세 배우 김영옥의 내공 꽉 찬 생활 연기는 관객들을 빨아들인다. 전기세를 아끼겠다며 한밤 중 불을 꺼놓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바람에 아들을 놀라게 하고 색색의 봉지로 싼 식재료들을 냉동실 가득 저장해놓고 얼리면 평생 가도 상하지 않는다고 믿는 모습까지. 감독이 되살린 ‘엄마 실생활 디테일’은 다소 뻔한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한편 공감과 웃음을 동시에 이끌어낸다.
박경목 감독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영화 속 이야기는 올해 91세가 된 우리 엄마 이야기”라며 “모두의 가슴에 얹혀있는 엄마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 공포가 된 뒤틀린 모성애
장르는 예상 밖에 공포물이다. 딸과 단 둘이 고립된 채 살며 미국 시골마을에서 양봉을 하는 1세대 이민자 아만다에게 어느 날 한국에서부터 엄마의 유골함과 영정 사진이 도착한다. 아만다는 엄마를 극도로 혐오한다.
아만다는 과거 어머니에게 충격적인 수준의 학대를 받고 자랐다. 아만다는 반대로 자신의 딸에게 더 없이 다정한 엄마처럼 보인다. 그러나 알고 보면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의 깊은 트라우마로 집에서 일체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딸은 외부 세계와 철저히 단절시키는 등 또 다른 방식으로 딸을 옭아매며 학대한다. 엄마의 잘못된 양육방식이 한 사람의 정신을 얼마나 황폐화시킬 수 있는지, 뒤틀린 모성애가 얼마나 공포스러울 수 있는지를 공포물 형식을 빌려 보여준다.
● 뒤바뀐 아이, 절절한 모성애
영화는 나이도 직업도 사는 환경도 다르지만 모성애만큼은 똑같이 지극한 두 여성 이야기에 집중한다. 동시에 배우로서의 자신의 꿈을 펼치는게 최우선으로 스스로도 “나는 모성애가 없다”고 말하는 아나 엄마도 보여주며 모성의 크기가 다를 수 있음을, 각자의 이유가 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불안함과 슬픔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는 크루즈의 명연기도 관전 포인트.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이에 앞서 지난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볼피컵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