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G 선발투수 폰트. 뉴시스
비운(?)의 주인공은 SSG 개막전 선발투수로 나선 윌머 폰트(34)였다. 폰트는 2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NC와의 경기에서 9이닝 동안 9삼진 무피안타 무볼넷을 기록하는 퍼펙트 피칭을 선보였다.
하지만 폰트의 KBO리그 최초 9회 퍼펙트 피칭 기록은 ‘비공인’으로 남게 됐다. SSG와 NC가 9회까지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9회까지 투구 수 104개를 기록한 폰트도 10회말에 등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SSG 타선이 10회초에 4점을 내며 폰트는 승리투수가 된 데에 만족해야 했다.
유 위원의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경험에서 비롯된 평가다. 유 위원이 두산 선수 시절이던 2015시즌 팀 동료인 외국인 투수 마야(41)도 그해 4월 9일 136구를 던지며 KBO리그 통산 12번째 노히트노런을 작성한 일이 있다. 하지만 이날 무리한 탓인지 KBO리그 두 번째 시즌을 치르던 마야는 이후 부진을 거듭한 끝에 약 두 달 뒤 방출됐다. 김원형 SSG 감독은 “폰트의 투구 수가 9회까지 104개였던 것을 고려해 교체했다”고 설명했다.
퍼펙트는 없지만 KBO리그에서 볼넷 등으로 출루를 한번 이상 허용한 ‘노히트노런’ 경기는 총 14번 있었다. 이중 폰트만큼이나 ‘아쉬운’ 상황이 두 번 있었다.
정민철
1988년 당시 빙그레(현 한화) 투수였던 이동석(58·은퇴)도 9이닝 동안 삼진 5개를 잡으며 무안타 무사사구 경기를 펼쳤지만 실책 2개로 두 차례 출루를 허용했다. 이런 면에서 퍼펙트 경기는 투수만 잘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퍼펙트 경기의 인연이 전혀 없지는 않다. 일본프로야구(NPB) 최초 퍼펙트 피칭을 달성한 선수는 후지모토 히데오(藤本英雄·1918~1997)다. 원래 나카가미(中上)라는 성을 썼던 그는 부산에서 태어나 8살 때 일본으로 건너간 뒤 귀화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 이름은 이팔룡(李八龍)이다.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 3일인 1950년 6월 28일 당시 요미우리 소속으로 니시닛폰(현 세이부)을 상대로 대기록을 작성했다.
당시 기록을 세운 일본 아오모리 야구장 앞에는 최초의 기록을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후지모토는 나중에 “퍼펙트 게임을 치를 때만 해도 나는 한국 국적이었다. 그러나 재일교포 사이에 한국전쟁에 징집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아 일본으로 국적을 바꿨다. 이제는 인생에서 제일 후회되는 일이다”고 말했다.
MLB에서 마지막 퍼펙트 경기가 나온 2012년, 이를 달성한 셋 중 하나였던 필립 험버(40·당시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3년 뒤 KIA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 무대를 밟았다. 대기록의 주인공을 향한 기대감이 높았지만 험버는 12경기에서 3승 3패 평균자책점 6.75를 기록한 채 쓸쓸하게 짐을 쌌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