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이야기 ‘말임씨를 부탁해’, 괴팍하지만 따뜻한 모성애 그려
‘앵커’는 광기 어린 집착 보여줘… ‘패러렐…’선 자신 꿈 우선인 엄마도
韓이민자 그린 美영화 ‘UMMA’… 뒤틀린 모성애, 공포물로 그려
엄마들은 다 같지 않다. 자식에게 헌신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이 자식보다 먼저라고 여기는 엄마도, 무서운 집착을 보이는 엄마도 있다. 올봄 극장가에는 각양각색 엄마들을 다룬 영화들이 개봉했거나 개봉을 앞두고 있다. 관객에게 각자의 엄마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며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 괴팍함 아래 숨겨둔 모성애
“뭐 한다꼬 자꾸 내려온다고 캐 싸.”
85세 말임(김영옥)은 아들(김영민)이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오겠다고 하자 버럭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그래 놓고는 장을 보러 간다. 찌개를 끓이고 고기를 볶고 계단 청소까지 해 놓는다. 13일 개봉하는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는 동네 사람들에게는 다정하지만 아들에겐 걸핏하면 화를 내고 위악을 부리는 엄마 이야기다. 뭐 하나 아들 하라는 대로 하는 법 없는 고집불통이지만, 모성은 누구보다 깊다. 아들을 기다리다 넘어져 병원에 실려 가도 아들이 걱정한다며 한사코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는다.
영화는 아들이 고용한 요양보호사 미선(박성연)과 말임, 아들 가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어디에나 있는 노년의 엄마를 세밀화처럼 그려낸 85세 배우 김영옥의 연기는 관객들을 빨아들인다. 전기료를 아끼겠다고 밤중 불을 꺼놓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바람에 아들을 놀라게 하는 모습 등 감독이 살린 ‘생활 디테일’은 평범한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들며 웃음을 끌어낸다. 박경목 감독은 “모두의 가슴에 얹혀 있는 엄마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취지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 뒤틀린 모성애가 주는 공포
美 영화 ‘UMMA(엄마)’. 소니 픽처스 제공
이달 개봉하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 ‘UMMA(엄마)’도 눈길을 끈다. 한국계 배우 샌드라 오가 엄마 아만다 역을, 한국계 감독 아이리스 심이 연출을 맡았다. 장르는 예상 밖의 공포물. 미국 시골 마을에서 양봉을 하는 1세대 이민자 아만다에게 한국에서 살던 엄마의 유골함이 도착한다. 아만다는 엄마를 혐오한다. 그는 과거 엄마에게 충격적인 수준의 학대를 받고 자랐다. 아만다는 자신의 딸에게는 더없이 다정하다. 그러나 알고 보면 깊은 트라우마로 딸을 외부와 철저히 단절시키는 등 또 다른 방식으로 딸을 옭아맨다. 뒤틀린 모성애의 무서움을 공포물 형식을 빌려 보여준다.
20일 개봉하는 한국 영화 ‘앵커’의 소정(이혜영)은 딸 세라(천우희)의 메인 뉴스 앵커 자리에 집착한다. 딸의 기상 시간, 의상 등 모든 것에 관여하며 군림한다. 딸을 자신을 빛나게 해줄 수단으로 여기고 조종하려는 모습을 통해 광기로 변질된 모성애를 표현했다.
영화 ‘패러렐 마더스’. 스튜디오디에이치엘 제공
현재 상영 중인 스페인 영화 ‘패러렐 마더스’는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딸을 낳은 싱글맘 야니스(페넬로페 크루스)와 아나(밀레나 스미트)의 이야기를 다룬다. 야니스는 아이를 키우던 중 아이가 바뀐 사실을 알게 된다. 아나가 친딸로 알고 키웠던 야니스의 딸은 이미 돌연사했다. 야니스는 아이를 아나에게 돌려보낼 것인가. 영화는 강한 모성애를 지닌 두 여성에게 집중하는 동시에, 자신의 꿈이 최우선이어서 스스로도 “나는 모성애가 없다”고 말하는 아나의 엄마를 보여준다. 모성의 정도가 각자 다를 수 있고 거기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보여주는 스페인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담담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